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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8.




회사를 같이 다니는 친구가 글을 쓰자고 한다. 그 친구는 글을 써본 적이 없고 쓸 줄도 모른다. 잘 쓴다는 문제가 아니라, 한 두 문장도 매끄럽게 쓰지 못하고 어휘력도 폭이 좁다는 의미다. 책은 읽은 것도 읽을 것도 없다.


재밌는 걸 하고 싶다고, 그래서 예술을 하고 싶은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는 것뿐이다. 나는 글쓰기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권 같은 게 있어선 안 된다는 입장인데, 쉽게 여기는 걸 넘어 업신여기는 건 다르다. 어느 경지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쓰는 건 잘 쓰는 것이다. 쉽게 쓴 것처럼 보여도 쉽지 않은 글을 우리가 쓰자는 건 아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표현의 도구로써 생각, 감정, 느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생활의 도구'로 글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나'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글 쓰는 것이 낯설지 않도록 반복이 필요하다. 쓰고 싶어 못참겠는 이야기가 있다면 무턱대고 써야 한다. 거칠게 쌓인 이야기는 '탈고'를 통해 자연스러움을 입혀야 되고, '탈고'를 해내기 위한 능력 역시 반복된 글쓰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역에서 재능은 특별하다. 반복의 시간을 줄여주고 성장의 가속도가 남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능은 소수이고, 재능은 예외의 것이다. 누구나 굴이 손에 익을 때까지 반복하겠다란 진지함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실력보다는 의지, 태도가 중요하다. 내 친구는 '반복'할 생각이 없다. 지금 당장의 결과물이 중요하고, 내가 어떤 이야기와 표현할 것이냐 보다는 남들이 보았을 때 쉽고 재밌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와는 정반대에 서있다. 글쓰기에는 진지함과 완성도가 필요하다는 생각, 타인보다는 결국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 친구는 나와 팀작업을 하고 싶어하는데 그건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다. 글은 깊어질수록 내밀해지거나 완벽하게 기만하거나 극과 극인데, 그것들 모두 '나'가 개입해야 하는 일이다. 공유가 어렵고, 공유하기 껄끄러운 것들도 포함되어 있기에 공동작업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목적이 '상품'을 만드는 것이라면 가능한 일이기는 하겠으나.


그 친구는 아이디어가 있고, 모자라는 것을 모자라다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직설적인 표현력을 갖는다. 나는 아이디어가 없고, 침묵이 길고 느리다. 거의 대부분의 것에서 반대지만 같은 게 있다면 둘 다 애써 글을 써 완성 시킨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다. 똑같은 놈들끼리 되도 않는 소릴 주고 받는다는 시덥잖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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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0.




머리를 어깨에 닿게 기르고 다닐 때 나를 보는 사람들은 '00을 하는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주로 음악을 하느냐, 그리을 그리냐 하는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예술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어떤 장르를 집는가는 그 개인이 무엇에 더 친근한가에 달려 있는 듯했다.


왜 나에게 예술을 하느냐고 묻는가하면 외모의 꾸임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긴머리, 찢어진 청바지, 귀걸이, 늘어나거나 화려한 프린팅의 티셔츠 등등. 자신이나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주변인들이 입지 않을 옷과 악세사리를 내가 착용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삶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나는 '예술'을 하기 위한 기술과 도구를 가지고 있지 못해 '아니요, 아무것도 안 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20살에 닿아서 대학에 들어왔던 그 직후까지 스쳐도 기억하지 못할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20살의 중반 즈음, 그리고 군대 갔다온 후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외부로 드러낼 수 없던 욕구를 드러낼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었고, 선택의 자율권도 약간 있었다. 예술가로 보이고자 한 목적은 없었다. 10대 때 부모님과 옷을 사러가거나 사온 옷을 입는 게 지독히도 싫었다. 그런 짜증이 부모님에게는 미안했지만 언젠가부터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대단한 인내력으로 갈무리해온 욕구를 조금씩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고, 머리를 기르고 예쁜 옷을 입었다. 이정도의 자유였지만, 점점 더 많은 것들을 가족의 틀에서 꺼내 오로지 내 선택에 맡길 수 있었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침묵하는 관성은 한 번에 떨어지지 않았기에 관성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만 무질서하고 충동적인 선택을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귀여운 일상 속 실험'정도의 일탈뿐이지만 거긴 내에게 새로운 영역이었고 자극이 있었다. 그 자극들에 무뎌지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된 건 수 년이 흘러서다. 욕구를 다시 갈무리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 무렵 졸업을 했지만 특별히 변해야겠단 생각은 없었다. 보통의 직장인이 될 수 없던 나는 시민단체에 들어가 돈을 벌었다. 여전히 긴머리와 귀걸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긴머리를 잘랐을 때 별 느낌은 없었다. 긴머리가 지겨웠을 때니까. 머리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시 예술 같은 걸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건 머리를 밀고 나서다. 머리를 길었을 때처럼 예술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머리를 밀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기에 밀었을 뿐이다. 삭발한 머리는 편할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의미없는 것에 의미를 붙이고 싶어한다. 머리 길이는 예술과 아무 상관없고, 의미 따위와도 아무런 상관도 없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내가 예술가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오래 전부터 알았기에 외모가 판단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했다. 외모와 상관없는 예술가란 부름이었지만, '예술가'란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주변에 예술가가 많은데, 내가 예술가 타입에 꼭 맞는다고 했다. 처음 듣는 그 맥락의 말에 호기심이 일었지만 술자리에서 더 이상 포착되진 않았다. 


초중고를 다니는 동안 예체능의 예는 항상 내 성적을 깎아먹었다. 단 한 번도 내신점수를 올리는데 도움을 준적이 없었고, 내가 다룰 수 없는 영역의 것들이었다. 가끔 느끼는 재미나 호기심도 그저 막연했을 뿐이다. 단 한 번도 미래의 직업으로 고민한 적도, 지도나 훈련 받은 것도 없다.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에 대한 지식, 관심, 취향, 안목 같은 것들은 아주 늦게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주변 사람들에게 왜 예술가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 걸까. 어쩌면 그리 특별하지 않을 것이 예술일텐데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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