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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형이, 형수가 소개팅을 해줬다. 보통의 소개팅 형식은 아니었고 나를 불러 형수의 친한 동생과 함께 할 자리를 만든 것이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이번만 가자 싶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아직도 이런 수고를 한다. 




나에겐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형-형수와 친하지 않다는 점, 가족 앞에서 여자를, 낯선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형과 술을 먹어본 적이 없다. 생맥 500을 마신 적도 기억이 안 날만큼 드문 일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형과 친하지 않지만 적대감은 없다. 형을 떠올리면 동정심이 강해 다른 감정이 비집을 틈이 없다. 형과도 왕래가 없는데 형수는 더 멀다. 물론 둘은 나보다 싹싹하고 가족인 나와 친해지기 위해 애를 쓴다. 부모님 집에서 볼 때만 자연스럽게 몇 마디 말을 주고 받고 어색함은 없다. 지금의 거리가 만족스러워 굳이 만든 술자리 같은 건 피하고 싶었지만 한 번은 가야 다음 번 거절할 명분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이벤트에 동참했다. 물론 여자를 소개시켜주기 위함도 있었겠으나 나를 만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가족들과 있으면 입을 떼지 않는다. 부모님과 있을 땐 안부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긴 대화가 가능하지만 형 가족과 친척들과는 대화가 없다. 명절 때면 집안 일과 심부름을 썩 잘해왔기에 말 수가 적지만 착한 아이로 여겨진다. 형-형수와의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낲선 여자, 나에게 소개시키기 위한 여자까지 있으니 어떤 캐릭터가 어울리는지 갈피를 못 잡았다. 여자는 나보다 몇 살 어렸고 예쁜 외모에 싹싹했다. 형-형수와는 꽤 친한 사이라 많은 대화가 오갔고 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열심히 듣는 태도를 취했다. 흥미로운 대화는 없었지만 긴 시간 자리를 옮기며 술을 먹었고 나도 형도 그 여자도 취했다. 술이 오를 수록 말은 늘었지만,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에 비해 많아졌을 뿐이다. 그날 내내 더 많은 말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무슨 말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술에 취해 애교를 피우는 그여자에게 호감이 갔고, 그여자는 나에게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가족과 관련이 없는, 내 주변 사람들과 연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었겠으나 처음부터 소개팅에 성공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형수의 자랑으로 여자를 소개시킬 목적의 술자리가 있음을 알던 어머니에게 하루이틀 후 전화가와 경과와 나의 마음을 캐묻는 말을 쏟아놓았다. 소름이 끼치고 무서웠다. 발가벗겨진다는 그 식상한 표현이 딱 맞았다. 술을 먹던 그 날도 형수는 그여자와 내가 사귈 것을 기정사실, 결혼까지 기정사실인 것처럼 말했다. 이렇게 싹싹하고 애교 있는 여자가 집안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아버지가 특히 더 좋아할 거라는 등등 생각할 생각도 없는 일을 형수는 신나 열심히 말했다. 다른 여자를 데려오면 괴롭히겠다는 말을 수 차례 반복했을 때 불쾌감이 약간 생길 뻔도 했으나 어디서부터 말을 바로 잡아야 할지 몰라 그래,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웃었다. 




술을 먹은 그 다음 주 주말 펜션을 잡아 넷이서 놀러가자고 결정했다. 술이 깬 후 흐지부지된 것도 있고 등떠밀리는 모양으로 여자에게 연락을 해 따로 만나자는 말을 건네  없던 일로 만들었다. 그여자의 번호를 받아 놓지 않아 술자리가 있은 후 며칠이 지나 형에게 여자의 번호를 건네 받았다. 연락을 해 인사를 했고, 다음을 기약하고, 그 후 연락은 없었다. 옆에서 지켜봤으면 답답하고 의뭉스럽고, 주선자는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행동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흘러 가족들의 대화에서 그여자는 사라졌고, 형-형수와의 관계는 이전 그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루하고 조금의 시간을 더 고생한 것치고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남자는 외모면 다 아니냐는 형수의 말에 동의하지만 그 외의 것도 필요하다는 걸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취미나 비슷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내 말은 진짜이기도, 진짜가 아니기도 하다. 그여자는 나와 다른 삶을 살았고,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가장 최근의 연애 시도는 나와 다른 부류의 여자를 만나는 것이었는데 모나지 않고, 대다수가 가진 삶의 목적과 구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반 년도 채 되지 않아 난 시들해졌고, 형수가 소개시켜준 그여자와의 관계도 다를 가능성이 없었다. 부모님은 가족이라는 동질성을 강조하고 소중히 여기지만, 마찬가지다. 나는 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르다'는 말을 가족에게 꺼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잠깐의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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