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170920.




머리를 어깨에 닿게 기르고 다닐 때 나를 보는 사람들은 '00을 하는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주로 음악을 하느냐, 그리을 그리냐 하는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예술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어떤 장르를 집는가는 그 개인이 무엇에 더 친근한가에 달려 있는 듯했다.


왜 나에게 예술을 하느냐고 묻는가하면 외모의 꾸임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긴머리, 찢어진 청바지, 귀걸이, 늘어나거나 화려한 프린팅의 티셔츠 등등. 자신이나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주변인들이 입지 않을 옷과 악세사리를 내가 착용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삶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나는 '예술'을 하기 위한 기술과 도구를 가지고 있지 못해 '아니요, 아무것도 안 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20살에 닿아서 대학에 들어왔던 그 직후까지 스쳐도 기억하지 못할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20살의 중반 즈음, 그리고 군대 갔다온 후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외부로 드러낼 수 없던 욕구를 드러낼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었고, 선택의 자율권도 약간 있었다. 예술가로 보이고자 한 목적은 없었다. 10대 때 부모님과 옷을 사러가거나 사온 옷을 입는 게 지독히도 싫었다. 그런 짜증이 부모님에게는 미안했지만 언젠가부터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대단한 인내력으로 갈무리해온 욕구를 조금씩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고, 머리를 기르고 예쁜 옷을 입었다. 이정도의 자유였지만, 점점 더 많은 것들을 가족의 틀에서 꺼내 오로지 내 선택에 맡길 수 있었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침묵하는 관성은 한 번에 떨어지지 않았기에 관성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만 무질서하고 충동적인 선택을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귀여운 일상 속 실험'정도의 일탈뿐이지만 거긴 내에게 새로운 영역이었고 자극이 있었다. 그 자극들에 무뎌지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된 건 수 년이 흘러서다. 욕구를 다시 갈무리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 무렵 졸업을 했지만 특별히 변해야겠단 생각은 없었다. 보통의 직장인이 될 수 없던 나는 시민단체에 들어가 돈을 벌었다. 여전히 긴머리와 귀걸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긴머리를 잘랐을 때 별 느낌은 없었다. 긴머리가 지겨웠을 때니까. 머리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시 예술 같은 걸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건 머리를 밀고 나서다. 머리를 길었을 때처럼 예술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머리를 밀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기에 밀었을 뿐이다. 삭발한 머리는 편할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의미없는 것에 의미를 붙이고 싶어한다. 머리 길이는 예술과 아무 상관없고, 의미 따위와도 아무런 상관도 없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내가 예술가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오래 전부터 알았기에 외모가 판단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했다. 외모와 상관없는 예술가란 부름이었지만, '예술가'란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주변에 예술가가 많은데, 내가 예술가 타입에 꼭 맞는다고 했다. 처음 듣는 그 맥락의 말에 호기심이 일었지만 술자리에서 더 이상 포착되진 않았다. 


초중고를 다니는 동안 예체능의 예는 항상 내 성적을 깎아먹었다. 단 한 번도 내신점수를 올리는데 도움을 준적이 없었고, 내가 다룰 수 없는 영역의 것들이었다. 가끔 느끼는 재미나 호기심도 그저 막연했을 뿐이다. 단 한 번도 미래의 직업으로 고민한 적도, 지도나 훈련 받은 것도 없다.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에 대한 지식, 관심, 취향, 안목 같은 것들은 아주 늦게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주변 사람들에게 왜 예술가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 걸까. 어쩌면 그리 특별하지 않을 것이 예술일텐데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반응형

'옛블로그1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페에서  (0) 2018.02.28
글쓰기  (0) 2018.02.28
만년필  (0) 2018.02.28
소개팅  (0) 2018.02.28
채동욱 사건_정보와 관념의 사슬  (0) 2018.02.2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