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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8.



오늘 운이 없게도 카페가 무척 시끄러웠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갔기에 소란스러울 것을 알았지만, 12시가 가까워가는 시간에도 진정되질 않았다. 이른 시간의 시끄러움은 다수에 의한 것이지만, 늦은 시간의 시끄러움은 한 여자 때문이다. 운이 없다는 건 주관적이지만 객관을 함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겼다. 오늘은 운이 없었다기 보다 재수가 없었다. 더 주관적인 표현이고, '나 오늘 재수가 없었어'처럼 동정을 구하려는 의도 없이 씨발을 한 번 읊조리는 것과 같은 의미다.


내 자리를 박박 긁은 그 여자의 말은 어제 술을 먹으며 생긴 사건, 말, 생각에 관한 것이었다. 하필 읽는 게 철학책이어서 주의를 나눌 여유가 없고, 그 소리를 의식에서 격리시킬 수 없었다. 듣지도 못하고, 들을 수도 없는 그 소리는 들을 만한 내용도 없었다. 말은 술을 먹은 사건에서 최근 신변잡기로 나아갔다. 사전 지식도, 맥락도 없기에 내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평소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겠으나 요즘 한 번씩 심하게 욱씬거리는 왼머리를 날아와 때리는 그 여자의 말을 피할 수가 없었다. 소리 외에도 내 주의를 끈 건 그여자의 행동이다. 음료를 하나 들고 앉아 1번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30분 이상을 훌쩍 넘기 통화 후, 곧바로 2번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대략 2시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통화를 하고, 내가 카페를 나갈 무렵 3번 사람이 없나 전화를 뒤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카페는 누군가에겐 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그 목적에 꼭 맞은 행동을 한 그녀 앞에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여자가 쏟아낸 말의 양과 열의는 대단한 것이었다. 관념적, 형이상학적, 현대적, 사이버적 등등 고루한 표현으로 양에 차지 않는 이 현상은 내가 몸 담고 있는 현실을 훌륭하게 표상한다. 일하는 척, 공부하는 척, 독서하는 척 앉아 SNS만 하다 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시대에 좀 뒤떨어진 감이 있으나, 관찰가능한 행동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보다 더 행위예술적이다.


그여자를 관찰한 객관적 환경 외에 내 귀가 박박 긁힌 내적동기를 적어보자면, 그런 쓰잘데기 없는 말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행위에서 아무런 의미를 읽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왜 타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것들을 버리는 걸까. 분리수거의 과정도 없이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재활용의 여지도 없어 단 1분 후에 허공에 흩어질 말들. 내 귀를 긁는 건 쏟아지는 질 떨어지는 언어와 나로서 이해할 수 없는 말하기 행위였다. 전자와 후자는 서로를 강화해 '무(無)'를 생성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주둥이를 쎄게 후려치고 싶은 그여자와. 짧지만 강렬하게 매장을 뛰어다니며 소리친 애새끼와 그 애새끼를 어부바둥둥한 어른 새끼 몇 명. 늦은 시간 급작스럽게 생길 뻔한-다행이 생기지 않은- 술자리도 내 머리 속을 박박 긁었다. 두통이 올 듯 뇌에 몸살기가 느껴져, 그여자처럼, 급히 글을 써 화장실에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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