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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0.



마음은 드물게 여러 번 읽은 책이다. 살면서 책에 동화된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을 준 책이기도 하다.


처음 읽었을 땐 쉬웠고, 외로움을 말하고 있다는 데 멋있음이 느껴졌었다.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모를 그땐 아마도 K처럼, 자살을 앞둔 선생님과ㅏ 닮았던 시기였다. 아마도 K처럼, 사랑에 상처를 받았지만 그 사건을 포함한 고독 그 자체에 발목이 잡혀있었다. 죽기로 작정했을 때 선생님이 수 십년 전 K의 죽음을 이해했듯 완전한 무기력에서 나는 선생님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책모임에서 읽기로 한 마음을 보고 참석하기로 했다. 마음이란 책과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 아는 약간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모임 날짜가 다가올수록 조금 후회가 들었는데 타인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느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양가의 감정이 존재했던 셈인데, 모임에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도 '자랑'만으로 충분한 수준의 이야기가 오갔다. 이 책이 소설적으로 어떤 가치를 가지고 남들에게 설명하며 자랑을 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책과 동화를 경험하기 이전의 일이다. 그 이후헨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오랜 만에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 자랑하고 픈 호승심이 치민 것이다. 마음은 심심하고 평이하고 속좁아 보이는 소설이라 자랑질하기에 더욱 적당하다. 이번 모임에서도 예외 없이 마음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개입하지 않으며 논점과 해석의 맥락을 잡는 일을 하며 안심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말하는 외로움, 고독에 대해 집중할 수도 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회가 주워졌어도 말할 수도 없었겠으나 토론에 집중해 발갛게 상기된 사람들의 얼굴에선 외로움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자랑질은 만족감도, 허무함도 가져왔다. 


마음과 동화된 경험은 소름끼치고 고통스러웠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비춘 책이고, 종래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시 펼칠 용기는 없었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저 좋은 책으로만 내손에 들려있다. 생의 감각이 무서우리만치 곤두섰을 때 느꼈던 동화를, 생의 감각이 질척하게 엉긴 지금 느낄 수 있을리 없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책을 다시 읽었다. 그 공포를 다시 느끼지 않음에 안도하면서, 그건 그것대로 서글픔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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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 1장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1장을 읽으며 몇 차례 손을 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에 대한 핑계를 얻었다. 1장은 차라리 읽고나면 구도가 좀 보였다, 이 책의 주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세부 내용을 베르그손의 언어로 적었기에 일관된 구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장, 3장은 베르그손의 이론을 일반 철학으로 넓혀가며 철학사의 주요 이론들과 비교를 하고 있어 읽기가 1장 보다 어려웠다. 철학 일반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 여백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한다.






베르그손은 개별적 기억이 현재 경험에 개입해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새로 나들어진 기억은 이전의 기억보다 더 넓은 이해와 경험을 포한한다고 말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기억은 다시 저장돼 다음 번 기회 때 적용됨을 반복하게 된다. 더 나은 인간, 삶이 풍부해지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감각적 경험, 지적 경험을 꾸준히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써놓고 보니 뻔한). 


베르그손의 주장을 읽으며 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난 꽤 오랫동안 새로운 기억을 쌓는 노력에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시기엔 무분별하게 기억 생성 작업에 휩쓸리기도 했다. 지금도 그 시기의 휩쓸림이 남긴 기억이 삶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새로이 기억을 만들어 내지 않는 인간은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원뿔 꼭지점에 해당하는 현실 지각과, 원뿔 밑면은 현실 지각이 배제된 완벽한 기억의 세계, 몽상의 세계이다. 인간은 두 극점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살아간다고 한다. 기억이 많다면 원뿔은 더 크고 넓어질 수 있을 테다. 작은 원뿔에 갖혀 사는 삶은 서글프지 않나.


그 당시 꽃피기 시작한 생리심리학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읽으면서도 지금 더 발달한 생리심리학이 베르그손의 주장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들을 생각했다. 객관, 과학에 압도당하는 게 싫었는지 추상, 형이상학의 영역을 확보하려 노력한 듯 보인다. 그가 경계한 대로 어딘가 허공에 흩뿌려진 철학은 점점 현실 어딘가에 붙잡혀 박제되고 있으며, 물질의 힘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랬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지금 시대를 예비한 '저항의식'을 담아 놓은 게 아닐까란 인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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