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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 1장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1장을 읽으며 몇 차례 손을 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에 대한 핑계를 얻었다. 1장은 차라리 읽고나면 구도가 좀 보였다, 이 책의 주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세부 내용을 베르그손의 언어로 적었기에 일관된 구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장, 3장은 베르그손의 이론을 일반 철학으로 넓혀가며 철학사의 주요 이론들과 비교를 하고 있어 읽기가 1장 보다 어려웠다. 철학 일반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 여백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한다.






베르그손은 개별적 기억이 현재 경험에 개입해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새로 나들어진 기억은 이전의 기억보다 더 넓은 이해와 경험을 포한한다고 말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기억은 다시 저장돼 다음 번 기회 때 적용됨을 반복하게 된다. 더 나은 인간, 삶이 풍부해지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감각적 경험, 지적 경험을 꾸준히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써놓고 보니 뻔한). 


베르그손의 주장을 읽으며 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난 꽤 오랫동안 새로운 기억을 쌓는 노력에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시기엔 무분별하게 기억 생성 작업에 휩쓸리기도 했다. 지금도 그 시기의 휩쓸림이 남긴 기억이 삶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새로이 기억을 만들어 내지 않는 인간은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원뿔 꼭지점에 해당하는 현실 지각과, 원뿔 밑면은 현실 지각이 배제된 완벽한 기억의 세계, 몽상의 세계이다. 인간은 두 극점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살아간다고 한다. 기억이 많다면 원뿔은 더 크고 넓어질 수 있을 테다. 작은 원뿔에 갖혀 사는 삶은 서글프지 않나.


그 당시 꽃피기 시작한 생리심리학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읽으면서도 지금 더 발달한 생리심리학이 베르그손의 주장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들을 생각했다. 객관, 과학에 압도당하는 게 싫었는지 추상, 형이상학의 영역을 확보하려 노력한 듯 보인다. 그가 경계한 대로 어딘가 허공에 흩뿌려진 철학은 점점 현실 어딘가에 붙잡혀 박제되고 있으며, 물질의 힘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랬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지금 시대를 예비한 '저항의식'을 담아 놓은 게 아닐까란 인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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