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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1.



불과 서른 페이지를 읽기도 전에 번번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약간의 실소, 막연한 미안함 답답함, 낮은이나 약자라는 표현을 덧붙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 등 여러 감정들이 섞여들었다. 많이 듣고, 시청각 자료를 접했지만 글을 읽고 능동적으로 상황을 그려내는 일은 생생함을 동반했다. 능동적으로 간접경험하지 않으려 했던 사건을 가지런한 언어로 정리해놓자 피할 수가 없었다. 책에서 눈을 잠시나마 돌리는 건 소심한 반항 같은 행동이었다.


공감된다고 느끼지만 나는 여성이 아니기에 실제로 공감할 수는 없다. 소설의 주인공 김지영씨의 삶은 내 어머니의 삶에 비출 수 있다. 내 주변에 유의미하게 삶을 바라본 유일한 여성이다.


시누이가 여섯 쯤 되는 집의 장남 며느리로, 결혼을 하지 않는 삼촌으로 인해 집안의 유일한 며느리로 할머니를 부양하며 살았다. 내 육아는 할머니의 몫이었지만, 어머니로서 짊어진 무게감은 늘상 그녀를 괴롭혔을 것이다. 돈을 벌고, 가정의 내치를 책임지고, 장남의 며느리로 사는 다양한 역할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았다. 가끔 이런 말을 했다. 너무 일찍 결혼했고 일찍 아이를 낳아 젊은 시절이 없었다고.돌이켜보면 할머니의 삶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자식 여덞을 기르고 나이가 들어서는 손자에 얽매여 집 밖으로도 나가지 못했던 삶.


그녀들의 자유를 희생해 지금 내 자유는 획득됐지만, 의무감은 희박하다. 가족이라는 삶의 단단한 굴레는 한 세대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가 달라졌다. 어릴 적 나를 혼낼 때면 으레 가족끼리, 가족이 뭔데, 가족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온 그 말은 그 때나 지금이나 날 당황스럽게 한다.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결속을 상징하는 그 말은 나에게 사전적, 사회적 맥락으로 생명력 없이 받아들여졌고, 내가 이상한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늘상 어머니에게 미안한 건 그녀가 누리지 못한 삶을 내가 채워주지, 보상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이다. 둘째는 딸을 갖고 싶다고 했는데, 나도 내가 딸이었다면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 딸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생각했지만, 나는 아들이다. 내 주변 '아들'들은 대다수 -인간적으로- 나사가 풀렸거나 나사가 몇 개 없다. <82년생 김지영>에도 나오듯 남성들은 상식적인 맥락에서 읽히지 않는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를 택하겠다고 말한다. 남자로 사는 게 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느끼고 있다. 


나는 '김지영씨'를 위한다는 무엇도 선언하지 않는다. 마치 타인이라도 된 듯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을 수없이 접했고, 무언가 바꾸겠다는 열정도 에너지도 상실했기에 '김지영씨'에게 눈길을 돌리는 소심한 반항과 모순과 자책을 삶에 두고 우울해하며 살아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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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4.


  


유명한 책인데 이제사 읽어 봤다. 고전이 될만한데 나에게는 그렇게 와닿진 않았다. 애초에 깊이를 논하기 위해 쓴 책도 아니니까.


주인공 요조는 태어날 때부터 요즘 말로 소시오패스 쯤 되는 인간이다. 타인과 전혀 감정적 공유를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행동도 이해하지 못하고, 표정이나 어투의 맥락들도 이상하게만 보일 뿐이다. 그렇다고 또 대담한 것도 아니라 자신을 숨기기 위해, 타인들과 다름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연기하다 파멸에 이른다. 


지난 번 읽었던 <모래의 여자>와 맥이 닿는 부분은, '소외'란 키워드 정도 될 것 같다. 아웃사이더적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그 시기 일본이 현대화 되며 발생했던 인간 간의 거리와 소외, 추상화가 작가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준 듯하다. 주인공 요조만큼 극단적이지 않지만, 자신을 억누르고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 살아야 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충분히 어필할만한 책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주인공은 참 쓰레기인데, 다른 사람들은 안타깝다고들 한다. 스스로 명확히 인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내가 느끼기에는 자기 연민이다.  





  ▲ 에곤 쉴레, 겨울버찌와 자화상



이건 보면서 묘사나 서술이 꽤 생생했는데, 연혁이나 해설을 좀 참고하니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에 가깝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한 김춘미씨가 해설서처럼 뒤에 써놓은 말 중 '자전적 소설이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허풍이 심해서 걸러 봐야한다'라고 하던데, 좀 그렇긴 한 거 같다.... 근데 잘 분리는 안 되더라. 


민음사 버전 인간실격 표지에는 에곤 쉴레의 그림이 실려 있다. 에곤 쉴레는 28살에 자살했는데, 그 때 그렇게 사창가에 지내며 영감을 받아 작업하던 작가들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도 나름 방탕한 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살했다.


주인공 요조가 그렇게 혼자 되는 것에 대해 공감 못한 다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차라리 너무 잘 이해된다..... 그래서 그렇게 타락하고 파멸하는 걸 이해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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