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12.
그는 소위 (빡쎈)'운동권'이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전국을 돌며 한미FTA가 왜 잘 못된 것인지를 강의하고 다녔다. 대학가 운동권의 끝물, 90년대 후반 학번에서 그는 두드러지는 엘리트 운동권인 셈이다. 의례 그렇듯, 그는 그 바닥에서 꽤나 아는 사람이 많았고, 선후배 관계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운동권이란 사람들이 갖는 직업이란 게 얼추 정해져 있기 때문이고, 그 또래에서 아직까지 NGO 영역이나 노동운동과 관련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을 한창 다닐 때 '운동권'문화를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NL, PD 이런 표현들을 하나도 몰랐다. 나중에 그런 사람들과 꽤 어울렸지만, 아직도 모른다. 내가 봤을 땐 그나물에 그 밥이었고, 이론적으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내가 그런 단어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십년 넘게 교회에 다녔지만 성경 첫 페이지의 주기도문을 외우지 못했듯, 그들의 이론이란 게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았고, 솔직히 진짜 쓸모 없는 짓거리란 생각을 가졌다. 내가 만난 시점에서 그들에게도 그 시절의 것들은 마치 추억인냥 다뤄졌다.
그가 빡쎄다고 해야할지, 이름 좀 알려진 운동권 인물이었지만 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은 과거의 것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전히 NLPD의 이론적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한미관계,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 뭐 그리고 국가적 전체주의나 독재에 반대하며 민중을 중시하는 전통적 무리들이-가장 중요한 건 자본주의를 반대해야 한다- 얼마 전 정치권을 시끄럽게 달궜던 통합진보당을 중심으로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있다. 바로 전 이름은 한총련이었던, 지금은 한대련이 된 세력엔 대학생 등 젊은 사람들이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활동한다.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거기 보다 더 왼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또 몇 무리가 있다. 아무튼 별로 되지도 않는 사람들이 아주 다양한 갈래로 구분돼 있어 난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그들을 구별하는 건, 이론적 경계가 아니라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보고 차이를 둔다. 어울릴 수 있는 곳과 물과 기름 같은 집단, 비슷한 성향을 보이기도 하며 사건에 따라 입장이 또 상이한 일군의 무리 등등은 꽤 인간적인 기준을 갖고 구분돼 있다. 친분, 인간적인 호불호, 권력지형에서의 땅따먹기 같은 게 기준이다. 옛날에야 모르겠지만, 이론이 어쩌구저쩌구하는 건 정말 옛날 얘기지 싶다. 당사자들이 들으면 천인공노하겠지만 내가 봤을 땐 너무 인간적일 뿐이다(더 자세한건 '대선을 보고'란 글을 참고).
사실 그 집단 문화에 반발한 셈이지만, DW는 자신의 주변인들과 새로운 영역에서의 사회활동을 펼쳐가고 싶어 했다. 고루한 옛날 얘기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적인 얘기를 하고, 젊은 사람들의 감각으로 세련된 활동을 하고 싶어 했다. 그와 주변인들이 나름 그 바닥에서 주목 받은 건 변화하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었고, 환경이 요구하는 바와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뒤에 쓰겠지만, '태생적'으로 변화의 한계가 존재했고 변화란 건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새로운 한다라는 명제만 남는데, 이 타이틀을 갖고 싶었던 게 이유였다.
'운동권'이라 표현하는 집단은 우리 사회에서 손 꼽히는 보수적인 집단이다. 변화와는 담을 쌓았고,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변화를 수용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판에 대응하는 태도는 두 가지다, 받아 들이거나 밀어 내거나. 운동의 전통을 잇고 있는 세력이 통합진보당이니 한대련이니하는 이름을 걸고 남아 있고, 이에 반대하는 태도를 지닌 이들이 어느 정도 변화의 필요성을 수용하며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DW는 후자의 성향을 가진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는 이들 전부를 통틀어 '진보'라고 부르곤 한다.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진보'란 표현을 빌리자면, 진보세력 내에서도 꽤나 많은 갈등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외부로 표출되는 사건은 정당과 관련된 갈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은 민중운동을 지향한다지만 사실 정치권력의 효용성을 절실히 느끼고, 또 원하기에 권력이란 자원을 획득하면 이를 둘러싸고 꼭 갈등이 발생한다. 물론 갈등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프로세스나 경험 없이 수직적 위계와 단일한 가치체계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 왔기 때문에 문제를 풀 수 있을리 없다. 몇 차례 분당과 소수정당의 발생과 소멸의 맥락은 가장 크고 전형적인 갈등형태를 드러내는 사건인데, '진보'에 속한 이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정적'이라 부를 수 있는 진보 내 갈등대상에게 감정적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차츰 희석되고 갈등해결을 위해 방법론을 고심하는 이들이 당연히 존재하지만 결과적으로 적대감이나 회의감이 쌓이고 그들 적대적 집단 간 멤버십이 강해질 뿐이었다. 마치 비온 뒤 땅이 단단해지는 것과 같다.
운동 좀 했다, 하는 모든 이들에게 발견할 수 있는 건 약간의 영웅심과 이를 뒷바침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단 추상적 가치를 쫓는 이에게는 당연히 필요한 '덕목'이겠지만. DW가 지식인으로서 갖고 있는 사명감은 과거 운동권에 몸 담았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이로써 스스로에게 부과한 책무 같은 것인데 과거의 것이 더 이상 현재를 대변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과 형태를 가지고 '운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진정성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 변화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그런 사명감말이다. 그는 항상 삶에 대해 몽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미래를 설계해 사람들에게 떠들길 좋아 했는데, 이러한 '수다'는 그 스스로 부과한 사명감, 책무의 무거움에 대한 내면적 반발이었던 것 같다. 그의 인생 플랜은 시시각각 변했기 때문에 특정 지을 수 없지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끝까지 사회 활동을 이어가며 운동을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모습, 다른 하나는 운동과 관계 없는 즐거움을 중심으로 삶을 계획하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 장사를 한다든지, 어디 지방으로 내려가 조용히 살겠다든지, 예술과 밀접한 삶을 살겠다든지 하는 삶의 모습. 난 당연히 믿지 않았고 현실성이 없다 생각했지만, 후자에 해당하는 삶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가 더 그 다웠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후자의 삶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없을텐데, 전자에 해당하는 삶의 형태가 지금까지 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전자의 삶의 형태와 내용을 버린다는 건 그동안 그가 굳게 쌓아온 삶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에 그로서는 선택이 정해진, 답이 이미 정해진 문제를 고민하는 꼴이다.
그가 자유로운 모습, 풍류, 예술, 변화된 지식의 습득을 타인에게 표출하고 싶은 건 그가 속한 '집단'이 결여하고 있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정체성인 운동권 엘리트이자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이어가야 할 DW '개인의 역사'의 논리적 정합성을 위해 그가 속해 왔던 집단과 단절은 발생할 수 없다. 이들은 변절이란 단어 사용을 서슴없이 사용하는데, 옛날에 믿고 따랐던 사실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태도의 변화를 갖는 이에게 어김 없이 '변절(자)'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준다. 수 십년 동안 전승되어 온 사회과학 이론을 떠받들고 있는 이들에게 난 경악했지만, '진보-좌파'라 스스로 칭하는 이들에게 '신념'을 지킨다는 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척도로 작용한다. 더 강한 '진보-좌파'는 더 강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 신념으로 평가된다. 그 집단은 이미 신성화 된 지식과 경험들이 '바이블'처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새 것'이 끼어들 틈이 없다. 얼마나 열심히, 진정성을 가지고 믿는 가를 기준으로 위계질서와 집단의 인적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이런 진보-좌파적 신념을 가진 이들의 직업군인 노조, 시민단체, 국내 여러 영역의 NGO, 특히 (야권 성향의)정치판에 '인적 수혈'이 되지 않는 이유는 고리타분한 '바이블'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로부터 파생되는 집단윤리와 위계질서에 순응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뉴스를 볼 때마다 왜 데자뷰를 느끼냐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똑같은 '인간'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돌려 막기, 회전문 인사를 강하게 비판하는 집단들도 전혀 다를 바 없다. 그 공고한 인적 네트워크란 게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난 몇 년도 지나지 않아 경직된 집단문화에 지루함과 답답함, 무기력을 느꼈는데 긴 시간 동안 일선에서 활약하던 DW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들이 변화하지 않는 건, '넓은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 없이 한 자리를 파는 깊은 지식을 추구한다. 너무 깊이 파다보니,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사회를 깊은 지식으로 퉁쳐 버린다. 정말 몇가지 안 되는 개념-추상명사로 사회현상 전부를 설명한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노동(자), 정의, (불)평등, 계급 등이 그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가 노동자 계급 착취를 정당화하여 불평등을 야기하고 사회의 정의를 해치고 있다." 마치 기-승-전-"00"처럼 모든 문장의 시작과 끝은 저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된다. 기실, DW의 변화란 것도 문자의 내용은 그대로 둔 채 형식과 단어를 좀 더 새로운 걸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 번은 그의 동료이자 절친이 (분당 전)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기 위한 '위대한 진출'에 후보로 나간 적이 있었다. 최종 단계까지 진출한 DW의 친구는 토론에서 이런 사회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최근 청년실업 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이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청년층의 실업문제, 청년층과 얽힌 사회 문제는 결국 (이면의) 노동의 문제이자 노동계급의 문제가 현실에 드러나는 주요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질문을 받은 이유는 DW와 그의 친구 등 몇몇이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청년노동단체를 하나 만들었기 때문이다(물론 나도 관련돼 있었기에 기억하고 있다). 세세한 것까지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나는 DW와는 아니지만 그 친구와 여러 차례 회의와 토론 아닌 토론을 했고, 종국에는 이 '노동(계급)'에 대한 문제의식은 천년고목과도 같은 것이구나 싶어 변화의 가능성을 접은 바가 있다. 그들에게 청년층의 문제는 단지, 노동-계급 문제의 한 형태이고 청년층이란 노동운동의 새로운 대상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변화의 가능성과 비전으로 주목 받았던 '청년노동단체'는 결국 새로움은 전혀 없는 행위와 운영으로 스스로의 지위를 한 없이 밑으로 끌어 내리고 말았다.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가능성과 예측불가능한 요소를 제거해버렸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DW와 그 주변인들은 한 마디로 '운동권 엘리트'다. 20대 초부터 남들 앞에 서있던 이들이, 또 그렇게 생각해왔던 이들에게 새로운 건 그다지 필요치 않다. 잘 해왔던 걸 포기하고 위태로운 타이틀을 얻어가며 굳이 새로운 걸 취할 이유가 없다. 그들의 지위는 이미 젊은 시절 쌓은 유물 위에 견고히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던 이유, 변화의 가능성이 결국 형식만을 취한 건 DW가 가진 사회적 지위와 나름의 성취를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변화하려는 욕망의 실체는 자신이 쌓은 유산을 딛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력지형을 바꾸고자 하는데 있었다. 새로운 청년단체를 만든 것,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 나간 친구에게 함축된 의미(이 때는 나도 열심히 응원했다)는 DW를 포함하여 그 주변에 있는 젊은 이들이 집단-진보, 좌파, 또는 운동권으로 표현되는-의 고질적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며 그로부터 발생한 틈에 자리 잡아 존재를 과시하고 세력으로 인정 받는 것이었다. '패권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하나의 세력이 되고자 했지만, 말만으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행보를 보면 이젠 아예 '집단' 밖으로 나가 자리잡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그도 쉽진 않을 것 같다.
꽤 명석한 머리를 가진 그는 언변 또한 좋다. 어느 자리 건 화제를 주도하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술자리든 회의든 말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기 얘길 들어주는 걸 좋아 한다. 그와 자주 어울리는 이들은 그의 삶의 태도를 즐거워하고, 신기하게 보는 이들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인데, 그의 이야기는 너무 일방적이라 개인적으로 재밌지 않고, 중요한 건 내가 남자와의 대화를 즐겨하지 않는단 사실이다. 남자들에게 대화란 게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한데, 대화마저 '승리'하려는 성향이 곧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승리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강점은 부각하고, 약점은 숨기는 것이다. 내가 DW의 태도에서 각별히 싫어하는 게 하나 있는데, 토론이나 불리한 주제를 다룰 때 대상이 되는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는 것이다. 그는 항상 주변에 모인 모두에게 이야기하지 상대편을 직접 대하지 않는다. 무슨 공화정 광장에서 대중에게 연설하듯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말이다. 그는 뛰어난 언변으로 사람들을 자기에게 끌어 들여 승리를 챙긴다. 타인과 이야기를 주고 받기 보다 이미 결정된 답을 구하는 게 그에게는 편해 보인다, 물론 그가 생각하는 답이지만. 훌륭한 방법이긴 하다, 대화나 토론 자체가 성립하지 않도록 상황을 꾸리니 그가 부담질 것도 없다. 그 자리의 분위기다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동의하도록 만들면 된다.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 받아온 그에게 어찌보면, 너무나 어울리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말의 권위'가 지켜지길 원한다.
권위를 지키기 위해 못하는 건 단호히 거부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취한다. 적당히 다른 사람과 맞춰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예 관심을 꺼버리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는 한 두가지 분야의 아무추어정도 수준의 잡기를 지녔는데(직업적이 아니며 그럴 가능성이 현저히 적기 때문에), 취미라 부를 수는 없는 게 평소 그가 잡기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본 유일한 취미는, 거의, 음주다. 음주에 이어지는 기나긴 수다와 취해 부르는 술자리의 노래정도. 운동과 관련된 행위는 일절 거절한다. 노래나 춤추는 것도 극렬히 거부한다. 내가 봤을 때-그 부류 인간들이 대부분 그렇듯- 술 먹는 거 빼고 정말 재미 없게, 잘 못 논다. 전국민 공통 취미인 영화를 그나마 즐겨했다. 닉네임을 능력없는 영화 애호가로 할정도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말, 능력은 없었다. 한 번은 은교가 한 동안 회자될 시기였는데, 그는 틈만 나면 은교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 놓길 마다 하지 않았다. 마침 소설을 읽었던 터라 영화와 책을 비교하며 은교에 대한 평론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가 그렇게 다룰 수 있는 소재의 컨텐츠는 거의 없었고, 몇 가지 걸린 게 있으면 반복하길마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수준이란 게 영화나 책을 좋아 하는 블로거가 '아, 이 영화(책) 괜찮다'더라 수준이라, 들었던 이야기를 장소만 바꿔가며 반복해 들을 때마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와 업무를 하며 디자인 관련 회의를 하면 그 나름의 감각을 가지고 있고, 영화나 음악에 대한 취향도 가지고,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걸 걸러낼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어 보였다. 책은 주로 사회과학 서적을 읽긴 했지만, 독서도 꾸준하게 하는 편이었다. 다만, 그는 자신만만한 태도 때문인지 예술에 대한 관심이나 센스에 비해 지식이 늘지 않았다. 습득하는 지식이란 게 전문적이라기 보단 타인에게 늘어 놓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듣고 금새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돼 있었다. 몇 년 그를 보는 동안 내내 '수준'-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판단할 필요는 있지만-이 제 자리였다. 문화, 예술을 상대적인 평가, 주관적인 심미안을 가지고 보면 되기에 객관적인 판단과 분석이 필요치 않기도 하지만, 다른 이에게 일장연설을 늘어 놓으려며 그 장르에 걸맞는 지식과 경험을 배울 필요는 있다. 스스로도 더 많은 걸 즐기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예술 장르를 즐기는 기쁨보다 그에게 더 큰 기쁨은 말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정도의 감정과 표현도구들이 유지된 것 같다. 말버릇처럼 자신의 연애는 미술하는 이성, 예술하는 이성과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러기엔 운명적인 사건이 없고서야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예술에 대한 관심에 비해 가진 패가 별로 없던 이유는 다시 말하지만 자신의 언어가 가진 권위에 대한 만족 때문이리라 추측한다.
예술에 대한 자기만족은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대화를 이끌어 가고자 하는 성향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자기 이야기에 아주 만족하여 타인에게 자신의 것을 보여 주고 싶어하는 그의 태도에 기인한다. 자신의 낭만과 몽상, 지식, 감각을 드러내 보이고 타인이 그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냄을 즐긴다. 자신의 이야기가 인정 받는 다는 사실, 자신이 바라는 이미지를 타인인 받아 들이고 있다는 신호를 원하기에 의견이 다른 상대방과의 토론이나 회의, 대화 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반대되는, 또는 다른 의견을 접할 때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하고 몸짓은 이미 연설이라도 하듯 여러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왔다갔다 고정되지 않는 이유는 권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의 권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업무의 영역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회생활이란 곧 '위계질서'에 대하 적응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의 권위는 사회생활에서 적절한 도구임에 분명하다. 앞서 이야기한 청년단체의 대표가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 나갔을 때가 있었는데(DW의 친구가 나갔던 비례대표 선거와는 다른 당에서 진행했던 것이고, 그 친구가 나갔던 선거보다 더 빠른 시기에 진행됐다), 당선과 청년단체 내 반발-청년단체 구성원들의 정치적 스펙트럼, 관심도, 호감도, 참여도가 천차만별이었다-을 무마시키기 위해 일종의 '비밀 프로젝트 팀'을 만들었다. 청년단체의 대표가 선거에 나가느냐 마느냐부터, 만약 나간다면 선거를 이기기 위해 어떤 기획과 이벤트를 진행해야 되는가, 이런 것들을 준비하는 팀이었고 우연찮게 나도 포함됐었다. 난 목적과 선거 참여의 이유가 맞지 않아 얼마 후 팀을 나왔고, 대표의 정치참여 건은 생각보다 문제가 커져 수습이 힘든 상황까지 이르렀다. 결국에는 음지에서 활동안 팀이 있었음을 밝히게 되었고 청년단체 내 구성원 간 신뢰에 금이 간 사건이 있었다.
업무나 조직 운영에 있어 수평적, 민주주의 등 이러한 요소는 사실 DW에겐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찌보면 결과를 중시하는, 목표달성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건 그가 결정에 관여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다. 그를 알게 된 건 앞서 말한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며 알게 됐는데, 그 당시엔 직접적으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가 얼굴을 잘 내밀지 않았기도 했지만, 지금 따져보면 그는 결정권을 주로 행사하는 입장이지 실무를 처리하는 위치에 있는 구성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얼굴을 알고 지내다 기회돼 함께 돈을 받으며 일을 하게 됐고, 그 때 DW에 대해 더 깊이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우리가 속한) 조직을 운영하는데 민주주의 같은 건 필요 없다"라고 공언하며 DW 자신과 '(조직 내 모든 결정권을 가진)리더'가 준비한 조직 운영 플랜을 설명한 적이 있었다. 함께 청년단체에서 활동했던 이들에게 DW관해 들었던 표현은 '원래 혼자 다 한다'였다. 중요한 결정을 해 통보하거나, 여기서 그의 처세술을 볼 수 있다, 결정권을 가진 몇몇과 접촉해 자신의 의견을 반영토록 한다. 그는 권위를 행사하길 바라지 절차를 통한 수렴을 원하지 않는다. 우린 결국 부모를 닮게 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DW 젊은 시절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한 '운동권(집단)'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가 스스로 답답해했던 견고한 위계질서와 변화의 가능성을 사라지게 만든 보수적인 조직 운영을 반복했다. 그는 자유롭고, 창의적이고, 세련된 무엇을 바랐다. 주변인들에게 그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하고 몽상했으나, 그가 배운 건 자신이 바라는 능력과 정반대의 것들 뿐이었다. 그는 (나와 일했던)조직 내에서 전임 '2인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는데, 자리를 빼앗긴 전 2인자가 DW와 업무를 시작하며 우려했던 일이도 했다. 권력과 권위를 가질 수 있던 자리를 DW는 원했고, 결국 갖게 되었다. 그는 맘껏 자신의 권위를 누렸지만 말과 행동이 상이한 경우가 종종 발생했고,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철저한 위계질서를 도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DW는 자신의 게으름, 비규칙적인 업무 시간, 업무 지시 등을 자신의 자유로운 성향과 연결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본 건 자신의 자유로움을 자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러한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는 모습이었다. 권력욕, 명예욕도 없다 말하지만 DW는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권력을 욕망한다(물욕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의 주요한 정체성을 형성한 '운동권'의 경험은 그를 정치적 인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곳은 나의 시각에서, 시도 때도 없이 권력다툼이 일어나는 곳이다. 작은 결정부터 큰 결정까지 민주적이고 크리에티브한 아이디어의 결과물 따윈 없다. 누구의 발언권이 더 강한가, 누가 더 큰 발언을 할 수 있는가, 누가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가! 괴물을 공격하며 괴물이 되고 만다는 표현이 그대로 적용된다라고 할까. 살아남기 위해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 없이 관계를 맺고 관리해야 한다.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만큼의 권력이 필요하고 그러한 권력을 갖기 위해 처세를 한다. 우습게도 이 바닥 사람들은 체세에 아주 능하다. 아니, 능하기 보다 본능적이다. 선택을 할 때 어떻게 갈등을 줄일 것인가, 갈등을 줄이기 위해 누구를 설득하고 어떤 의견에 따라야 하는 것인가, 누구의 권위에 좀 더 힘을 싣어 줄 것인가. 한 번 상처나면 쉽사리 되돌릴 수 없는 바닥이다, 뭐 안 그런 곳이 있겠냐만은. 거창하게 말하지만, 사실 그냥 사람들이 사는 곳일 뿐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치적 인간으로 훈련된 DW는 본능적으로 권력을 탐지하고 획득한다. 운동권의 경험을 통해 획득한 정체성과 운동권으로서의 정체성과 다른 하나의 정체성이 그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원인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술을 좋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떠드는 걸 좋아한다. 어떤 종류의 예술이든 나름의 심미안을 가지고 즐기려 한다. 일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려는 태도(물욕을 가지지 않는 것과 상호관계), 한량처럼 보이기도 하는 생활태도는 자신의 삶을 꽤나 아끼고 즐기려는 쾌락주의적 성향으로 나타난다. 낭만주의자이길 원하며 자기 얘길 즐겨하는 그는 분명 나르시즘을 갖고 있다. 자기애를 갖지 않은 이가 없지만, DW의 나르시즘은 자신의 권위를 인정 받길 원하는 적극적 태도로 나타난다. 자신이 즐기는 것,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경험-감정을 드러내 인정 받는 것에 자기만족을 느낀다. 강한 자기애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이 속한 집단이 가진 부정적 속성-보수적, 강한 위계질서 등-에 반발하며 두드러진다. 어느 순간까지 '운동권' 문화는 DW의 자기애를 충족시켜 주지만 한계를 드러내며 다른 것으로부터 자기애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운동권 엘리트이자 지식인으로서 가진 사회적 책무감과 나르시스트로서의 쾌락주의적 갈등이 가끔은 마치 그를 '허풍쟁이'처럼 보이게 만든다(이제 난 그의 '계획'들을 전혀 믿지 않는다). 직업, 사회생활, 인간관계 등 현실적 조건은 '운동권'의 유산으로부터 지배 받지만, 자신의 나르시즘은 충족되지 않아 점점 더 몽상을 하는 것이다. 나르시즘은 물론 자신의 만족을 의미하지만, 우리의 욕망 대부분은 타자의 시선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나르시즘 역시 타자의 시선을 포함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게 '말의 권위'를 등에 진 채 자신의 이야기를 남들에게 전하고, 타인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이에게 끊임 없는 수다를, 위기감을 느낀 상대에겐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평범하지 않은- 불쾌한 행동을 취한다. 그는 내가 보아온 동안에 주요한 결정들은 두 가지 모습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이었다.
DW에 관해 누군가와 이런 얘길 나눈 적이 있다. "그 바닥 사람들은 이제는 원하지 않아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경험들을 쌓아 와서 그런지 자기가 원하는 걸 못하는 것 같아 좀 서글퍼 보여." "맞아, DW도 술에 취해서 그런 얘길 했던 거 같아.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다라고." DW의 변화가 한계에 부딪친 건, 그이 스스로 자신을 아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면 지금의 삶을, 지금의 자신을,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결코 그런 결정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사회적으로, 시기가 늦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는 나에게, 대화 자체가 드물지만, 자신이 짝사랑하는 이성에 대한 이야길한 적이 있다. 물론 그는 짝사랑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요즘 잘 지내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애인이 있었고 DW와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그처럼 순진한-부정 없이 기대(희망)에 가득찬- 사랑을 하는 모습에 (속으로)손발이 오글거렸지만 그게 정말 그다운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DW의 짝사랑은 왠만한 주변인들이 다 알고 있었고, 나 역시 건너건너 이미 들었었다. 직접 눈 앞에서 확인한 그의 모습은 20대 초반의 풋풋한 열기마저 느껴졌다. 맞다, 여전히 그는 사회적 능력과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풋풋한 열정이 가끔 낭만이 아니라 허풍이 되기도 하지만, 내적 갈등을 적절한 방향으로 이끌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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