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31.
공각기동대 프리퀄이 개봉한다는 걸 까먹고 있다 부랴부랴 아침에 코엑스까지 가서 챙겨 봤다. 안 봤다면 두고두고 후회했겠지만, 이 작품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새로 나온 공각기동대 시리즈를 못 봤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을 보고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고 했는데, 나도 포함된다. 실망스러운 프리퀄이다.
1. 쿠사나기 소령의 탄생
공각기동대는 쿠사나기 소령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이제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아니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혹은 작가도 안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과거가 밝혀진다. 빌어먹을! 그녀 만은 신비의 인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쿠사나기의 과거가 밝혀지고 나자 끈질기게 공각기동대를 물고 늘어졌던 사이보그의 정체성 문제가 맥빠지게 이도 저도 아닌 걸로 끝나 버렸다. 고스트의 핵심은 사이보그에도 깃드는가 아닌가다. 어쨌든 쿠사나기는 인간이었다, 사이보그가 된 캐릭터가 됐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언제부터 사이보그였는지 모르는 '그녀'는 항상 자신을 찾기 위해 고뇌한다. 이제 더 이상 고뇌할 필요가 없어 졌고, 공각기동대도 중요한 고민거리가 줄어들어 버렸다. 물론 쿠사나기는 사이보그 이전에 인간이었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밝혀져 버리면 관객들이 어쨌든 가지고 있던 희무끄리한 환상을 모두 깨버리는 짓이다. 이번 편에서도 그렇지만 점점 액션물이 되버리고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공각기동대의 액션이 멋지긴 했지만, 이전까지 중요했던 건 공안 9과의 작전 수행 능력이었다. 절묘하게 짜인 전투와 침투가 일품이었지, 개별 액션씬 자체에서의 매력은 크지 않았다. 액션만 따진다면 다른 에니메이션을 보면 되니까. 아직 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고는 하지만 악역을 뒤통수 치는 작전이 부재한 액션은 지적인 쾌감을 주지 못했다. 시티븐 시걸의 목꺽기와 첫 노리스의 돌려차기 같은 존재였던 쿠사나기가 별 거 없이 당하는 걸 보니 정말 뭔가 환상이 깨지는 것 같다. 뭔가 지금까지 있었던 게 다 없어진 느낌이다. 공각기동대는 사이버 펑크류 액션물이 아니란 말이다.
2. 시리즈는 계속 된다
이전과 같은 게 있다면, 후반부 전개가 아주 빠르다는 것이다. 쓸데 없는 감정선이 절제되고 뭔가 설명과 장면들이 무지하게 제시된다. 놓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이것도 전략이라면 전략일까. 이번 시리즈에서도 고스트의 문제는 주제로 다뤄졌다. 쿠사나기는 전뇌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환상 속에서 산다. 스마일맨 이야기와 얼마 전에 개봉한 솔리드 스테이트에서도 주되 게 다뤘었는데, 전뇌화가 된 세상에서 지금 보는 게 진짜인지 가짠지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쿠사나기의 환상은 쿠사나기가 갖고 싶었던 것들이 투영돼 나타난다. 사이보그에게서 의지와 감정이 생겨 정보가 없는 미지의 것을 상상한다. 바이러스가 만든 정보의 오류인가, 고스트 때문인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찔러도 찔리지도 않을 것 같던 쿠사나기의 리즈 시절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소녀처럼 생긴 의체와 같이 그렇게 감상적이었던 것이다.
공각기동대는 보고 나면 찜찜한 게 맛인데 이번 건 참 깔끔했다. 주 사건도 크게 사회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고스트의 문제도 쿠사나기 에피소드 정도고 이것도 잘 정리가 됐고. 공안9과 등장 인물들도 대부분 등장했고. 이거 참, 너무 프리퀄 다운 프리퀄이 아닌가. 다음 작품이 나오길 기다리지만 기대가 확 꺾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제 모습(?)을 찾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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