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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의 웹툰 내부자들을 영화로 만든 내부자들이 온다. 주연 배우가 무려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이다. 그들의 이름값만으로 이미 주목을 받을 만큼 받은 상황. 그리고 미생의 성공으로 일약 국민 웹툰 작가로 선 윤태호의 작품이라는 기대. 개봉을 미루면서 소문만 무성해서 더 커진 기대감까지. 웬만큼 재밌지 않고서는 사실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의외로 그저 그런 성적을 낼 수도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시사회를 통해 드러난 작품은 극화되지 않고 어둡고 눅진하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포착해 그대로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사실 사회 비판적 성격을 담은 작품들은 흥행에 쉽게 성공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현실감을 배제해야 관객들이 아 저건 영화구나란 안도감을 느끼며 영화를 칭찬하는 것이다. 이게 너무 리얼리티가 넘쳐 버리면 영화 속에 담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내가 사는 세상이 저렇게 까진 아닐 거야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화의 전체 분위기가 관객에게 거부당하면 몰입할 수 없을 것이고, 미묘하고 섬세한 연출은 그저그렇게 주목 받지 못한 채 지나가버리고 만다. 뭔가 임팩트 있는 사건, 반전, 액션이 없으면 정말 그저 그런 영화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영화가 괜찮고, 연기도 좋고, 다 좋은데 뭔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부족한 건, 관객이 외면한 그 현실성에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특히나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웹툰을 봐도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오거나 선역을 맡은 캐릭터가 죽거나 당하면 당장 악플가 거지 같은 평점들이 쏟아진다. 왜 괴롭히냐는 말이다. 항상 밝고 깨끗하고 해피하고 행복하고 재밌는 세상만을 그려대면 도대체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우리 삶은 행복과 슬픔과 분노와 더럽고 깨끗한 욕망들이 뒤엉켜 분리해낼 수 없다. 어느 순간 외면하고 싶은 욕망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걸 거부하려고 하면 인지부조화가 발생하고 또 그 간극을 메우려 앞뒤 안 맞는 언행과 사고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현실에서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된다. 우리의 삶은 평탄할지 몰라도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러움이 넘쳐날 수도 있다. 아니, 넘쳐나고 있다. 그렇게 현실을 부정해도 현실은 현실이다. 추상으로 존재하는 유토피아는 우리의 발밑에 없다. 현실을 외면할수록 나와 외부세계의 괴리는 커지고 점점 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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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아마데우스. 이 영화는 천재를 질투한 범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천재 vs 범인'의 모습을 그린 대표적인 영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아마데우스도 아마데우스지만 범인의 역할을 맞은 극 중 살리에르 캐릭터는 영화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도 사용되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아마데우스는 영화에서 거의 미친놈처럼 나옵니다. 그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며칠이고 귓가에서 떠나지 않을만큼 독특하고 괴팍한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는 만큼 삶은 엉망진창이지만 그가 가진 재능과 실력만큼은 진짜였습니다. 궁중악사 살리에르가 젊은 악사를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해줄만큼 아마데우스는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실제로 모짜르트는 4살 때부터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음악을 한 게 없지 않아 있지만, 그는 음악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아마데우스를 질투하는 궁중최고악사 살리에르는 아마데우스의 재능을 사랑하면서도, 질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데우스가 빛을 발 할수록 자신은 지는 해가 되어야만 했으니까요. 지금 지는 해가 되어 버리기에는 그의 나이와 실력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점점 아마데우스를 시기하고 암중 모략합니다. 







아마데우스를 죽인 건 살리에르지만, 하긴 살리에르가 직접 '칼'로 찌른 건 아니니 살리에르가 죽였다고 하긴 뭐하지만 살리에르가 아마데우스의 죽음에 큰 역할을 한 건 맞습니다. 살리에르도 그 사실을 회상하며 후회하고, 애정어려 합니다. 아마데우스가 살았더라면. 악사로서 그런 상상을 할수 밖에 없었을 테죠. 하지만 아마데우스의 삶은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미 너무 벗어나 있었습니다. 







천재들은 그런 걸까요. 어딘가 나사가 풀리고, 미치지 않으면 천재일 수 없다는 걸.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틀을 깨는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99%의 노력과 1%의 재능이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지만, 예술을 한 사람들은 '결국, 재능'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엔 재능이니 노력이니 이런 것보다 금수저냐 흙수저냐가 더욱 중요하게 다뤄지고는 있습니다. 아마데우스와 살리에르가 살았던 시기에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겠지만요.







어쨌든 살리에르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마데우스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은 아마데우스에게 사로잡혀 있는데, 그는 살리에르를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사회적 지위는 비교할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살리에르는 아마데우스에게 모든 걸 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좌절, 분노, 슬픔은 세상을 사는 거의 대부분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대입시켜 봤을 때 적잖이 슬픔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범인인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뭐 그렇게 어렵게 따질까요, 내일이 오면 내일 해를 맞이해 살면 되겠습니다. 사실 우린 살리에르만큼의 재능과 실력도 없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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