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완성도 높은 드라마라면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을 뽑겠다. 하지만 드라마를 많이 보진 않는다는 건 함정.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의 드라마여서 후한 점수를 주지만, 이 드라마는 근래에 보기 드문 뚝심을 가진 수작이었음이 분명하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미스테리 스릴러다. 한 여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밝혀지는 가정사와 인간의 더러운 욕망이 춤을 추는 그런 드라마다. 최근 공중파에서 강세를 보이는 드라마류는 달달한 로맨스 코메디, 남성들의 시선을 빼앗는 액션물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면 선남선녀가 등장해 이목을 끌던가.
얼마 전 KBS의 정도전이 몇 년 간 유행했던 퓨전 사극이 아닌 정통사극의 참맛을 선보이며 흥행에 성공했었다. 워낙 훌륭한 연기와 탄탄한 연출이 뒷받침 됐지만, 그동안 얼토당토 않는 인기몰이용 퓨전사극에 사람들이 지쳐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초반부터 마음을 쫄깃하게 만드는 긴장감을 조성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장막과 안개가 시청자들의 눈과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쉽고, 편하고, 친절한 드라마가 대세인 요즘 편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특성상 복잡함을 내표할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는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달린다. 그래서 초반 잠깐 주목을 받았으나 곧 시청률이 안나오기 시작한다.
좀 편하게 보고 싶은데, 무서운 거 안 보고 싶은데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무섭고 너무 복잡하다는 거다. 생각하기 싫은데 왜 자꾸 생각하게 만드냐는 그런 반응이었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길들여진 입맛은 계속 인스턴트만 소비해야 한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끝에 가서야 살인범이 밝혀지는데, 사실 살인범이 중요치 않았다. 죽은 여자를 둘러싼 인물들의 내면이 얽혀 어쩌면 단순할지도 모르는 사건을 아주 복잡미묘하게 만들어 버렸다. 요즘 드라마에서 인물의 다층적인 내면을 묘사한다라, 쉽지 않다. 스릴러물에서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이 반전의 클라이막스여야 하지만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그런 무리수를 행하지 않는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스릴러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드라마에 충실했다. 엄마와 딸, 가족, 뭐 그런 얘기였다. 좀 특수한 상황에 놓인 '가족'을 스릴러스러운 색깔을 입혀 사람들에게 풀어 놓았다. 최근 드라마들은 억지스러운 결말 자주 선보이고 있다. 그건 이야기를 쓰려고 드라마를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시청자 인기몰이를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해 진행하다 보니 결말이 어떻게 수습이 안 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리얼타임으로 드라마는 찍히고 있고, 대본은 써야 겠으니 말도 안 되게 써 재끼는 거다.
기준은 뭐다? 역시 시청률이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해피엔딩, 모두가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권선징악 됐습니다. 뭐 이런 낯 뜨겁고 유치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항상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 새드엔딩일 수도, 잔잔하게, 쓸쓸하게, 짠하게, 아쉽게 끝날 수도 있는 게 엔딩이다. 행복한 걸 보고 싶어, 행복하고 싶어. 그런 대리만족을 심하게 드라마에 투영하다보니 자극적인 드라마를 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오랜 만에 등장한 정통극이라고 할 수 있다. 어설픈 시청률 몰이가 없었던 보기드문 드라마. 마무리에도 반전 노이로제는 없었다. 그렇게 순리대로 이야기는 끝났다. 그것만으로도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걱정 없이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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