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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었을 대나는 초등학교 몇 학녀이었을 거다. 당시엔 시디가 없었고 테이프로 노래를 듣던 시절인데 형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테이프를 사모아 듣곤 했다. 어느 날 나에게 했던 자랑이 아직도 기억난다. 길거리를 가는데 나오는 노래가 모두 우리 집에 있는 테이프라 뿌듯했다는 거다.


굳이 나도 함께 사던 중인데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건 그때부터 내 음악 취향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뭐 어디서 정보를 얻을 곳도 없고, 노래를 다운 받을 수 있는 곳도 없고, 라디오도 안 듣고. TV에 나오거나 어쩌다 스쳐지나며 들었던 라디오의 한 두곡을 들었던 게 전부였다. 그런데 '가요톱텐'에 나오는 그런 가수들 말고 약간 비주류, 1.5군 정도의 사구들 테이프를 한 두 장씩 사기 시작했었던 때였다. 형은 자신이 생각하는 컬렉션이 만들어지지 않아 서운했던 거 였다. 









당시 김광석이 죽었다고 해서 떠들썩했다. 뉴스에 나오고 그랬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김광석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형도 몰랐도, 형과 나를 키웠던 할머니도 그가 누군지 몰랐다. 맞벌이를 하는 아버지 어머니와는 음악이 어쩌고 이런 얘기를 해본 기억이 없다. 사실, 별 다른 대화를 했던 기억이 없다. 그의 노래를 듣게 된 건 고등학교 쯤부터였다. 이등병의 편지나 알고 있었는데, 그건 그의 노래 중 아주 일부에 불과한 것이었다. 서른즈음에를 들었고, 사랑했지만도 조금 들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도 조금 들었고,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도 조금 들었다. 


당시만해도 이젠 테이프에서 시디로 대세가 넘어왔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야자 때문에 집에서 주던 약간의 돈과 용돈을 모아 시디를 사곤 했었다. 그래서 김광석 다시부르기 1을 샀다. 정말 좋았다. 그의 정규앨범인지 리메이크 앨범인지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다시부르기2도 샀었다. 그런데 다시부르기1이 너무 귀에 익어서 다시부르기2는 자주 듣진 않았다. 









당시 그런 구닥다리 노래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사랑했지만 정도가 듣기 쉬운 멜로디고 고음부가 있어서 내 또래 아이들이 아는 정도였다. 언젠가 김경호가 그 노래를 리메이크해 부르고 큰 히트를 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튼, 고3 시절 당시 엄청난 거금을 써 김광석 시디 3장, DVD 1장, 그의 일기장이 묶인 패키지를 구입했다. 당시 4만원 대 정도 였던 거 같다. 목동 사는 애들에게는 그리 큰 돈이 아닐지 모르지만 내 한 달 용돈 줄 꽤 큰 부분을 썼던 기억이다. 몇 년 동안 내 보물 같은 거 였다. 


그 시디도 왠지 1번을 많이 들었었다. 1번 시디를 다른 학교 친구에게 빌려준 일이 있었는데, 얼마후 돌려 받으며 자살할 것 같아서 못 듣겠다는 이야길 들었다. 독서실에서 그 시디를 돌리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 나는 반색했던 것 같다. 김광석의 노래는 그런 맛이 있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때나 대학 때처럼 깊이 빠져서 듣진 않지만, 김광석은 과거보다 훨씬 가까이 와있다. 그의 더 많은 노래를 알게 되었고, 노래에 담긴 감정을 조금은 읽을 수 있게 됐다. 나름 나 혼자 만족할만큼 맛을 살려 그의 노래가 불려질 때도 있다. 기타도 한 곡 정도는 칠 수 있다. 왠지 그가 과거보다 더 가까워졌단 사실이 반갑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이런 노래를 부르던 사람은 살 수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죽은지 20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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