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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제임스 완은 사람 졸이게 만드는 기술을 알고 있다. 서스펜스라고 하는 것과 공포영화라고 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뻔한 것 같으면서도 끝날듯 끝나지 않는 심리적 압박감을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쏘우를 보고 아 짱이다란 느낌을 받았는데, 그는 사람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밀려 오는 게임을 통해 죽을듯, 죽지 않고 터질듯 터지지 않게 긴장감을 끌고 가는 감각이 대단했고, 이번 컨저링에서도 그랬다. 내가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노련한 기술이 필요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보는 동안엔 딴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어서 그렇지, 컨저링의 스토리를 돌아 보면 여느 공포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사간 집이 알고 보니 귀신들린 집이고, 과거에 뭔 일이 있었고, 운 좋게 극복하거나 또는 죽거나.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자지러지게 만든 건 제임스 완이 재능을 살려 공포영화를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컨저링의 한 포스터에는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라는 문구를 적어 놨다. 같이 봤던 친구는 '무서운 장면 안 나온다면서....'라며 말 끝을 흐렸다. 중반 이후에는 나올 거 다 나온다. 아마 처음부터 귀신들이 난리쳤으면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진입할 때 관객들은 이미 긴장했고 공포영화를 잘 못보는 이들은 지쳐있었다. 같이 간 친구는 뒤로 갈수록 작은 소리에도, 뭔가 튀어 나올 것 같은 장면에도 깜짝깜짝 반응했다.  


내가 고른 저 포스터가,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는 그 문구가 공포영화의 핵심에 대해 말해준다. 무서운 장면으로 사람들을 무섭게 만들 수 없다. 스크림류의 살인 영화는 모든 걸 다 보여주기 때문에 무서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살인자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압박감에서 공포를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그리고 많은 영화들이 시도하지만 성공하기 어렵다. 컨저링이 나오기 전에도 몇 년 간 제대로 된 공포영화가 없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나왔을 때 감명 받고 그 이후에 주목할만한 공포영화가 있었나 싶다. 파라노말 액티비티도 그랬지만, 공포영화의 미덕은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공포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다.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소리를 내보내면 사람들은 긴장하고 준비한다. 뭐가 튀어나올 것 같다고 상상하며 쪼그라 든다. 그 때 카메라는 천천히 배우를 중심으로, 혹은 배우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며 뭔가 튀어 나올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컨저링의 초반부에는 소리만 나온다. 소리만으로 사람들은 충분히 긴장한다. 뭔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관객 스스로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알프레도 히치콕의 '탁자 밑 폭탄'의 예가 서스펜스를 잘 설명해준다. 뭔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감과 불안이 서스펜스라면. 공포영화는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장면에서 음악, 조명, 카메라워킹 등을 통해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다. 잘 된 공포영화가 없는 건, 잘 된 서스펜스 영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냥 소리지르고 잔인하면 공포영화가 될 수 없다. 서스펜스가 있어야만 한다. 


소리만큼이나 공포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조명이다. 저 포스터에도 나왔듯 어둠을 강조하는 것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빛을 통제해 어둡고, 필요한 장소에 최소한의 빛을 집중한다. 관객들의 시선을 이끄는 것이다. 관객의 시선은 빛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 관객의 시선에 대해 동선을 만들고 갑자기 동선에 변형을 주어 시각적 자극을 만들어 내곤 한다. 


공포영화는 결말이 나올 때 쯤이면 허무해지기 마련이다. 서스펜스가 끝나기 때문이다. 상황이 종료되면 긴장은 풀리고, 적절히 마무리 못하면 엄청 유치해진다. 컨저링이 성공한 이유를 하나 더 뽑자면,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을 갖게 만든다. 요즘 같은 때 아무도 죽이지 않는 공포영화를 찾기 힘들다. 


앞에서도 스토리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 영화 내 각각의 요소는 새로울 게 전혀 없었다. 악령과 엑소시스트, 사물, 기독교, 빙의, 동물-새, 초자연적 현상 등 기존의 영화에서 사용해왔던 오컬트적 요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영화다. 기막힌 반전도 살인도 없이, 엑소시즘이라는 전통적인 주제에, 절제된 표현까지. 컨저링은 클래식한 공포영화다. 제임스완은 자신이 가진 서스펜스의 재능을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틀에 집어 넣었고,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오컬트 영화를 좋아 하는 나에게 컨저링은 보기 좋았다. 본격 오컬트라고 하기에는 전형적인 공포영화에 가깝지만, 이런 소재를 다뤄 성공한 영화가 근래에는 없다. 아마 배우가 바뀌고 똑같은 내용에 비슷한 연출을 해도 또 즐거워 할 것 같다. 공포영화는 원래 그런 거니까.


그리고 공포영화를 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 여자와 함께 극장에 가야 한다는 것. 잘 된 공포영화가 좀 더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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