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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그리고 우린 3년 간 침묵했다. 최근 거대 멀티플렉스로부터 침묵을 강요당해 작은 소란을 야기한 다큐멘터리의 메인포스터 카피다. 논란이 예상되는 다큐멘터리를 개봉하겠단 멀티플렉스의 의지는 여러 사람에게 놀라움을 줬으나 ‘누군가로부터 전화 몇 통 받았다’는 말을 남긴 채 비참하게 꺾이고 만다. 이 다큐멘터리는 개봉 이틀 만에 멀티플렉스로부터 일방적인 상영 중단 통보를 받고 상영관에서 쫓겨났다. 개봉일 전국 33개 스크린에서 개봉했지만 불과 이틀 만에 4개 스크린으로 줄어드는 고초를 겪는다. 악재가 호재가 된 탓인지 13개 스크린으로 확장된 후 누적 관객 1만 명을 훌쩍 넘어 2만 명을 바라보는 작품이 됐다. 다큐멘터리임을 감안하면 훌륭한 성적이다. 개봉 전 천안함 사건 유가족으로부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개봉에 성공한 <천안함 프로젝트>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없었다. 실망스러웠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90분 내내 관객들에게 설명한다. ‘밀덕’이 아니라면 평소 해군의 초계함이나 어뢰, 한미합동해상훈련 등과 관련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며 관심도 없다. 천안함 사건의 ‘이미지’는 충격적이었으나, 생소한 소재들이 얽힌 사건이었다. 그 점을 과도하게 인식한 탓인지 다큐멘터리는 관객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쉽게 설명한다. 군함의 생김새와 움직임은 어떻고, 사건일지의 구성을 조목조목 짚고, 과학적 사실을 검증하고, 군과 언론의 움직임을 소상히 재구성한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일렬로 정보를 쭉 나열해놓고는 ‘역시 결론은 소통의 부재였다’란 준비된 답을 꺼내놓는다. 3년 동안 천안함 사건에 침묵한 이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통의 부재라는, 안 쓰이는 곳이 없어 단물 빠진, 내용 없는 기표에 불과한 그 이유 때문이라니 관객도, 감독도, 제작자 스스로도 놀랄 판이다. 


 <천안함 프로젝트>가 마케팅의 일환으로 전면에 내걸었듯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은 <부러진 화살>의 감독 정지영이 맡았다. 그는 <부러진 화살>에서 김명호 교수의 ‘석궁 사건’을 소재로 권력의 ‘사법 살인’을 실감나게 그려내 평단과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을 만들 당시 “다만 객관적 자료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라 이야기한 바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천안함 프로젝트>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작품의 객관성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천안함 프로젝트>는 천안함 사건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예상컨대, 그 누구도 이미 실재하는 문자를 단순히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작업과정은 문자정보를 영상화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합리적 의심을 가로막는 사회’라는 작품의 결론은 ‘우린 3년 동안 침묵했다’는 문장의 반복에 불과하다. 우리가 <천안함 프로젝트>에 기대한 것은 왜 우리가 3년 동안 침묵해야만 했는지, 무엇이 합리적 의심을 가로막았는지 그 이유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객관성이란 요소에 발목을 붙잡혀 해야 할 작업을 의도적으로 회피했거나 필수적인 작업을 누락했다.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몇 달 후 언론과 대중들의 뇌리에서 지워질 때쯤 서프라이즈 신상철 대표의 법정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신상철 대표는 ‘진실 게임은 이제부터’라고 말했지만 천안함 사건의 충격은 대한민국에서 몇 달도 채 지속되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의 법정 다툼이 ‘그들만의 전쟁’으로 치러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시선이 존재했고 <천안함 프로젝트>는 정확하게 그 지점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즉, 다큐멘터리의 전반부는 천안함 사건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나머지 반은 법정에서 드러난 사건의 모순을 고발하는데 사용했다. <천안함 프로젝트>를 만든 이들은 마치 정보의 부족이 침묵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인상을 준다. 단언하건데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했을 리 없다. 하지만 작업을 거기까지였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정보는 몇 시간만 투자하면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내용의 몇 배에 달하는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설명은 새롭지도, 깊지도 않았다. 수많은 정보들이 이미 존재했지만 천안함 사건은 침묵되고 갈등을 야기해왔다. 이 부분에서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은 영화제작 이전 대중들에게 회자됐고 문자로 된 텍스트가 존재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한 후 전국이 들끓었다. 영화 <도가니>는 개봉 후 ‘도가니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천안함 프로젝트>와 보다 직접적으로 비교가능한 작품은 2012년 개봉관 수 30개 미만 다양성영화 중 최다 관객수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있다(7만 317명). <두 개의 문>은 용산참사를 재구성하며 폭넓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국가권력에 피해 받는 이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냈고,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하며 -경찰, 공무원들이 단체관람을 할 정도의-놀라운 파급력을 갖는다. 첨예한 사회 문제를 영상으로 옮기며 성공한 위 3개 작품은 사회적 메시지를 제외하더라도 장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영상언어로서의 완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천안함 프로젝트>는 문자보다 영상의 압도하는 현실을 증명하고 싶은 영화인들의 은밀한 욕망의 결과물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몇 년 간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작품들의 조악한 연출력에 인상을 찡그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한 발 양보해, 제작비를 끌어올 수 없는 소재의 영화이기에 그 수준에 맞는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지만, 그런 조악함을 예비하면서까지 작품을 만드는 이유, 그것마저 이해할 수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지라도 사회적 의미를 갖는 작품이고, 또 그런 이유에서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영상의 내적 완결성보다 외적 요인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은 ‘주객전도’될 위험요소를 품고 있다. 영화 <26년>을 보고 혹평한 허지웅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이미)상찬 받을 준비가 된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 중단은 악재라면 악재지만, <천안함 프로젝트>가 가진 외적 기회요인을 극대화시킨 사건이기도 하다. 


 사회고발 작품들은 정의감이라는 표면적 감정 뒤에 숨은 대중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대중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사회고발 작품들을 찾아보는 이유는 그 본능적인 감정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분노를 자극하기 위해 모티브로 삼는 사회적 문제가 지닌 메시지와 의미를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과장하고 영상언어로서의 완성도를 포기한다면, 작품에서 다루는 사회적 문제들은 한갓 ‘분노 마케팅’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 화살은 언젠가 영화계로 되돌아 올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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