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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4.



"서푼짜리" 이미지



 이 장에서는 이미지-상상(력)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서구 사상의 흐름에 대해 비판, 반박하고 있다. 특히 사르트르에 대한 반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데, 사르트르 개인의 영향력과 그가 <상상력>, <상상계>라는 저작을 남겼기 때문에 변별력을 갖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사르트르는 이미지-상상을 "지각이나 기억의 양상과 구분지으려 노력"했으나 '이미지의 계보(fmaille de l'image)'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구성에 실패하고, 말미엔 "현상학적 방법을 스스로 포기"하여 "이미지가 지식의 타락을 표상한다는 생각"까지 나아가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 장에서 비판하고 있는 사상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이성'을 중요히 여긴다는 점에 있다. 이미지를 인식의 잔유물, 경험의 편린의 수준으로 다루거나 사유의 결과물로서 기호나 상징으로(이미지보다 인간의 인식,지각이 선행), 또는 "(이미지란)관념 작용의 '장애'"정도로 다루는 것이다. 


 하지만 뒤랑은 (단호히)말한다. "이 은유들의 '의미', 상상계의 이 거대한 의미 체계가 바로 모든 합리적 사유와 그 기호학적 부류가 전개되어 나올 기원적 모태이다."

 


서구의 사상, 특히 프랑스 철학은 존재론적으로는 이미지(image)를, 심리론적으로는 상상 기능을 '오류와 허위의 주범'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17쪽.

 


사르트르와 그에 앞선 연합론자들과 베르그송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상상계를 모든 사유의 상징으로 간주한다. 연합론자들은 그것을 기계론적 연상의 모형으로, 베르그송은 의식의 기억 전체의 모형으로, 사르트르는 무화과정의 표본적 모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유심리학자들은 오로지 사유의 형태적 요소들을 대조적으로 두드러지게 하기 위하여 상상력을 극소화하는 것이다. 26쪽.


 


사유와 그 상징적 표현들의 화합은 마치 지속적인 교정과정 혹은 영속적인 정제과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제된 사유, 즉 "수천만 원짜리" 사유도 "서푼짜리" 이미지들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역으로 가장 혼동스럽고 착란이 일듯한 경우에도 이미지들의 찬란한 분출은 하나의 논리를 따라-그 논리가 아무리 빈약한 "선푼짜리"라 하더라도- 이어진다. 상징은 기호학의 분야가 아니라 특수한 의미론의 영역에 속하며, 이를테면 인위적으로 주어진 하나의 의미 이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으로서 울림의 본질적.자발적 힘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3쪽.


 

특정 언어에 속하는 모든 의도들이 일정한 보편성을 띠도록 보장해주고, 모든 사유가 그 뿌리에서부터 상징적으로 구조화하도록 자리를 잡아주는 것은 바로 그 발화자의 차원, 즉 상징의 차원이다. 34쪽.


 

그(민코프스키-병리심리학)는 어린아이나 원시인의 정신적 삶이 "성인 중심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은유들의 의미가 점진적으로 억압 혹은 '수축'되는 과정으로 간주한다. 이 은유들의 "의미", 상상계의 이 거대한 의미 체계가 바로 모든 합리적 사유와 그 기호학적 부류가 전개되어 나올 기원적 모태이다. 35쪽.


 


 

상징과 동기부여


 

이 장은 이미지, 상징(체계)를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기 위해 이전에 행해진 연구들을 검토한다.


  


상상계의 연구를 위해서 기호의 자의성이라는 소쉬르의 첫째 원리를 거부해야 한다면, "기표의 선형성"이라는 둘째 원리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상징은 더 이상 언어학적 속성을 지닌 것이 아니므로 단일한 차원에서 전개되지 않는다. 따라서 상징들을 결정하는 동기부여(motivation)는 더 이상 연쇄적인 근거들의 긴 사슬을 형성하지 않을뿐더러 그 어떠한 "연쇄"도 형성하지 않는다. 36쪽.


('motivation'은 주로 내재적 의미로 사용되므로 '동인' 혹은 '동기화'로 옮기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지만,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상징의 의미론적 생성'과정'에 대한 글이므로 이 책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동기부여'라는 말로 통일하였음을 밝혀둔다.)


때로 그들은 천체의 우주론적 동기부여 범주를 분류의 규범으로 삼아 계절과 대기 현상과 별들의 반복 운행이 작화적 상상력을 유발하는 것으로 파악하며, 때로는 단순한 원시 물리학의 기본 요소들을 택하여 그 감각적 특성에 따라 상상계라는 동질적 연속체를 힘의 장들로 분극화한다. 또 때로는 미소(微小)집단에서 언어 집단으로 넘어가기 직전 상태에 있는 집단들의 사회학적 여건이 상징의 근원적 배경을 구성하는 것으로 추정해보기도 한다. 37-38쪽.


상징의 범주에 관한 지각적 혹은 우주적 참조 기준을 찾는 대신에 사회학적.문헌학적 동기부여를 밝혀볼 수도 있다. 뒤메질(Dumezil)과 피가니올(Piganiol)이 암암리에 시도한 작업이 그런 것으로, 뒤메질은 의례와 신화 및 집단 언어를 구성하는 동기부어의 기능적.사회적 특성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피가니올은 점령자와 피점령자의 역사적 정치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의식 구조 및 상징체계의 차이에 중점을 두고 있다. 41-42쪽.


프루질루스키는 상징적 의식 구조를 진화론적 단면으로만 파악하여 그것이 "모신"의 태동에서 "부신"의 완성으로 이행해가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와 같은 위계화는 앞에서 우리가 비판한 바 있는, 상상계를 평가절하하는 합리주의에 침윤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하나의 상징체계에 '선험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다른 것을 격하하는 태도는 과학적인 사실 연구에 어긋나는 호교론적 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44쪽.


(위에서 언급한) 이 모든 분류 방법들은 상징의 동기를 오로지 상상하는 의식 외부의 여건에 의거해서 밝히려는 객관적 실증주의로 인해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그들 모두가 상상계의 의미론을 실용주의적으로 설명하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44쪽.


요컨데 상징체계의 구조와 발생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사회학적.정신분석학적 동기부여 방법들은 모두 은밀하게 형이상학적 편협함이라는 결점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적해온 일반 심리학의 근본적 폐해, 즉 본질적으로 기호학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현상을 설명으로 완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시 빠져드는 격이다. 47쪽.


'인류학적 도정'이란 상상계의 차원에서 주관적.동화적 충동들과 우주적.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되는 객관적 요청들 사이에 존재하는 끊임없는 교류과정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입장에 따라 존재론적 선행성의 문제는 논외로 할 것이다. 충동적 몸짓과 물질적.사회적 주변 환경 사이에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혹은 그 반대로 오가는 '상호발생'이 분명히 있다고 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적 탐사는 바로 그 가운데, 그 가역적 노정 속에 위치해야 한다. 결국 상상계란 대상의 재현이 주체의 충동적 명령에 의해 동화 조형되고, 역으로 피아제가 탁월하게 보여준 것처럼, 주관적 재현은 객곽적 환경에 맞춰 "주체가 사전에 조절되는 것"에 의해 설명되는 그러한 도정과 다름 없다. 48쪽.


 



수렴적 방법과 방법적 심리주의

 


 제목대로 상상계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다. 뒤랑은 심리학에서 출발점을 찾고 있는데, 그 분야에 대해선 딱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다. 심리학에서도 그 한 분야인 정신분석학 책 몇 권 읽었다고 심리학이란 용어를 쓰면 안 되겠구나란 생각을 다시 했다. 심리학이 다양한 분야로 나눠져 보다 더 과학적 실험들이 행해지며, 특히 뇌의 작용과 관련된 심리학 분야가 주목 받고 있단 소릴 오래 전에 들은 기억이 있다. 그 분야의 성과가 어떻게 다른 학문과 연결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물론 뒤랑이 어떤 획기적인 연구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 건 아니다. 인문사회과학이 할 수 있는 연구방법이란 게 말 그대로 (방대한)자료를 정리하는 일이고, 이 책이 쓰여진 것처럼 다른 이의 연구를 차용하거나 반박하며 발전할 수밖에 없다. 다만, 서론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아 이거 하다보니 이런저런 연구방법이 적절해보이네.'였다. 뒤랑은 논리적 연결 속에서 상상계 탐구의 방법론을 모색하지만 그 전제가 되는 건 아마도 그들의(뒤랑과 연구 궤적을 함께하는) 직관이었을 것이다. '문화주의적 출발점보다 심리주의적 출발점이 결론에 다다르기 용이하기 때문에 선택한다'란 표현 등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다양한 연구와 자료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결과들의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좌'를 그리다보니 수렴적 방법과 방법적 심리주의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들도 방법론을 찾음에 있어 수렴적 방법을 사용한 셈이다. 뒤에서 충분히 다루겠지만, 이 장만으로는 헐거운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읽다보니 각주 두 세개에 엉뚱한 내용을 달아 놓은 것 같다)


 

 상징들이 구성하는 그와 같은 인류학적 도정의 중심축을 한정하기 위해서는 아주 실용적이고 상대론적인 수렴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51쪽


 유추는 항목이 서로 다른관계들 사이의 유사성을 인지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수렴(convergence)은 상이한 사유 분야에서 항목별로 유사한 이미지 성좌들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수렴은 유추라기보다 상동(相同, homologie)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비유가 필요하다면, 유추는 푸가의 음악적 기법에 비교될 수 있고, 수렴은 테마 변주 기법에 비교된다고 말할 수 있다. 51쪽.


 이를테면 미세 비교적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는 방법을 통하여 이미지들의 조합 혹은 집합들을 드러내 보여줄 단순한 접근법을 취하는 것으로 만족했으며, 우리는 그 같은 수렴 현상들이 비교 방법의 두 가지 국면을 명백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을 곧 알아냈다. 즉 정태적 국면과 운동학적 국면으로, 요컨데 성좌들은 행위적 이미지들, 타동적 구도들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동시에 상징적 응결점, 즉 상징들을 응축, 결정하는 특정 대상들 주위로 조직된다는 사실이다. (레비스트로스와는 달리 우리는 비교 방법이 유형학이나 구조 원형학의 "기계적" 방식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발견이란 물론 철저히 연구된 단 한 문제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지만 입증은 비교적 수렴을 통해 이루어지며, 특정 문제가 표본 모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미세 비교적"이라는 말로 의미하고자 한 것은 바로 그 두 가지 방법, 즉 구조적 방법과 비교적 방법의 결합이다). 54쪽.


심리주의적 출발점은 더 간편할 뿐 아니라 일반적이기도 하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바로 그 점을 간파하고서, 유아의 심리가 "각각의 개별 사회가 지닌 것보다 훨씬 풍요로운 보편적 토대"를 이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문화적 환경은 하나의 복합화과정(complication)일 뿐 아니라, 유아기의 몇몇 심리적 윤곽들을 특정화하는 과정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점에서 유아를 "사회적 다형아(多形兒, social polymorphe)"라는 수식으로 적절히 표현한다. 56쪽.


 따라서 상징의 분류를 위한 심리학적 출발점으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원동 미미지들(image motrices)"이다. 문제는 재현의 "기본이 되는 비유들", 그 중요한 "근원적 범주들"을 어떤 운동 기능 분야에서 찾아내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베흐테레프의 반사학에서 분류의 원칙과 "지배 몸짓(gestes dominants)"의 개념을 차용하려 한다. 58쪽.


 베덴스키의 뒤를 이어 베흐테레프와 그의 학파가 체계적으로 연구한 "지배 반사(dominante reflexe)"라는 개체 발생에서 최초의 "조절(accommodation)" 체계를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동감각체로서, 피아제의 이론에 따르면 상징체계를 구성하는 동화과정에서 이완 상태에 있는 모든 재현활동의 근거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크톰스키의 작업과 용어들을 이어받아 근원적 반사 작용을 연구한 베흐테르프는 신생아에게서 두 가지 "지배소"를 발견한다. 59쪽.


 

 첫 번째 지배소는 예를 들어 우리가 어린아이의 몸을 곧추세울 때, 여타의 모든 반사를 조정하거나 억제하는 "자세(position)" 지배소이다....... 지각하는 것이 수학적 수직이라늠 여료한 관념이라기보다 오히려 "육체적"이고 직관적 수직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수직의 위상학이지 그 기하학적 특성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배 반사에서는 이미지의 운동감각적 유사물과 감정적 유사물이 병존한다고 할 수 있다. 60쪽.


 두 번째 지배소는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으로서, 신생아들이 입술로 빨아들이려는 반사와 젖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반사를 통해 나타내는 섭취 지배소(dominante de nutrition)이다. 이와 같은 반사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일어나기도 하고, 허기 때문에 야기되기도 한다. 60쪽.


 베흐테레프 역시 좀더 막연하게나마 "성욕 반사(reflexe sexuel)"를 하나의 지배소라고 단정한다. 인간에 관한 이 분야의 참고 자료가 부족하긴 하지만, 우플란트의 결론에서 주기적이며 내적으로 동기부여된 교접 지배소(dominante copulative)의 특성만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호르몬에 의한 교접의 동기부여가 일정한 주기를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고등 척추동물들의 경우 성행위 자체가 율동적 움직임을 동반하며 몇몇 종들에서는 진정한 짝짓기의 춤이 성행위에 선행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성행위는 리듬의 영향 하래 전개되는 셈이다. 61-62쪽.


 



인류학적 요청, 구도와 용어


 

내용 전개를 위한 개념과 용어를 정의하고 있다. 생소하기도 하고, 이어질 내용은 서론에 대한 논증일 것이기에 필요한 용어 대부분을 발췌해놓는다.



따라서 유효한 문화, 즉 인간의 성찰과 몽상에 동기를 부여하는 문화는 본능적 지주와 같은 지배 반사에 의해 발생되는 자연적 투사를 일종의 목적성을 통해서 다원 결정하는 문화이다....... 그래도 여전히 문화적 조정은 대략적으로라도 지배 반사의 목적성 그 자체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부적응으로 인한 신경증의 유발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지배 반사와 문화 환경은 최소한의 일치가 필요하다. 66쪽.


몸짓은 외양적 유사성에 근거하는 완전히 지적인 물질주의적 범주를 무시하는 것이다. 르루아 구랑이 지적하듯 대상 물질이란결국 성향들의 복합체이자 몸짓들의 그물망일 따름이다. 가령 꽃병은 액체를 담으려는 일반적인 성향의 물질적 유형화일 뿐이다. 점토의 주조라든가 나무나 나무껍질의 재단 등은 그 같은 성향에 부가되는 이차적 성향들이다. "이런 식으로 이차적 성향들은 일반적인 성향들을 특수화함으로써 수많은 대상을 덮은 그물망 같은 것을 형성한다." ...... 구체적 대상들이 제시하는 이러한 "이중의 접근"은 용구들에 대한 기술학적 해석을 자유롭게 해준다. 이 같은 해석의 다의성은 상상적 전이 속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상징의 대상들은 용구들 이상으로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여러 지베소들이 겹쳐지는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근본적 복합성, 상징적 대상의 복합화 때문에 주요 반사 몸짓에서 출발하여 지각 환경 대상들에 대한 심적 고착과 투사가 형성하는 그물망과 매듭을 풀어가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68-69쪽.


피아제가 말한 "감정 도구들", 다름 아닌 정신분석학자들이 중시하는 개인과 최초의 인간 환경 사이의 관계들 역시 이 같은 직접적 기술환경 속에 통합될 수 있다. 사실 어린아이의 세계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종의 도구로 나타난다....... 어쨌든 우리가제시하는 분류법은 기술 분류 외에도 정신분석학자들의 주된 상징 분류 방식인 부모와 성에 따른 분류를 통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70-71쪽.


이제 반사학과 기술 이론 및 사회학이 뚜렷이 수렴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상징체계를 '낮의 체제'와 '밤의 체제'로 광범위하게 나누는 이분법과 반사학적 삼분법을 토대로 작업 구도의 원칙을 설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형들의 수렴 현상을 경험론적으로 분류하는 이분법을 채택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방금 지적한 대로 이분법적이자 삼분법적인 이 이중 구도가 모순된 것이 아닐 뿐더러 뒤메질, 르루아 구랑, 피가니올, 엘리아데, 크라프, 반사학자들과 정신분석학자들 등과 같이 상이한 분애의 연구가들이 밝혀낸 다양한 인류학적 동기부여들을 완전히 포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고전적 정신분석학은 지배 반사의 삼분법을 기능상 이분법으로 환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73쪽.


구도란 이미지를 역동적.정의적으로 일반화하는 것으로서 상상계의 사행성과 일반적 비실사성을 구성한다....... 구도가 접합하는 것은 칸트가 말했던 것처럼 이미지와 개념이 아니라, 무의식적 몸짓과 원동감각 기능, 또는 지배 반사와 재현 활동이다. 상상의 역동적 틀 혹은 기능적 바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 같은 구도들이다. 구도들이 앞서 살펴본 반사학적 몸짓들과 다른 점은 단순히 이론적인 기억 흔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한정적 재현 활동 속에서 육화되는 도정이라는 사실이다. 76쪽.


원형이란 구도를 실체화하는 것이다. 융은 원형들이 지니고 있는 인류학적 도정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본원 이미지는 항상 활발하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자연의 몇몇 변화과정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명백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신생활 및 일반적 삶의 몇가지 내적 조건들과도 관계가 있다는 사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기원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의와 계통발생과정에서 축적된 "기억 침전물"에 대한 논지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원형이라는 상징적 실체를 "관념의 전초적 단계 혹은 모태적 지대"로 파악하는 융의 핵심 견해는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사물 이전"에 관념 속에 주어지는 것은 바로 관념의 정서 재현적 틀, 즉 원형적 동기가 될 것이다. 77-78쪽.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상징은 구도의 개별적 형태이므로 보다 하위적인 형태이다. 그 개별성은 대개 원형이나 구도를 구체적으로 "예해"하는 하나의 "감각적 대상"의 개별성으로 귀착된다. 원형이 관념과 실체화의 도상에 있다면, 상징은 단순히 실사, 명사, 때로 심지어 고유 명사가 되는 과정에 있다. 79쪽. 


구도와 원형, 그리고 단순 상징의 연장선상에 신화가 있다...... 우리에게 신화란 일정한 구도의 충동에 따라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가는 상징.원형.구도들의 역동적 체계를 의미한다. 신화는 담화의 맥락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이미 합리화의 초안인 셈인며, 그 속에서 상징들은 말로, 원형들은 관념으로 귀착된다. 신화는 하나의 구도 혹은 일군의 구도를 명시한다. 원형이 관념을 유발하고 상징이 명사를 산출하는 것처럼, 신화는 종교적 교리나 철학 체계 혹은 브레이에가 간파한 대로 역사적.전설적 설화를 유발한다고 할 수 있다. 80쪽.


결국 신화 체계 혹은 정태적 성좌 내부에 있는 구도.원형.상징들의 동형성을 통해서 우리는 상상적 재현의 몇 가지 규범적 모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근원적 구도들을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고 한정적이며 비교적 안정된 그 모형들을 우리는 구조하고 부를 것이다....... 형태는 정지성.고착성.정태성 등으로 정의된다. 반대로 구조는 변환적 역동성을 내포한다....... 지금으로서는 구조란 변환 가능한 형태로서 이미지들의 집결을 위한 동기부여적 모형의 역할을 수행하며, 스스로도 '체제'라는 좀더 일반적인 구조로 집결될 수 있다는 것만 밝혀두자.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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