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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한 줄 평을 하자면, 생각할수록 빈틈이 많은 영화다.


영화는 물론 꼬리칸의 인물들이 반란을 하는 특정 상황에 맞춰져 있다지만, 사건의 개연성보다 캐릭터의 개연성이 너무 없었다. 설국열차의 주인으로 주인공을 택한 이유를 정말 모르겠고(오히려 그의 휴머니즘이 지배자의 계획을 망치지 않았는가, 감독은 관객에게 그의 휴머니즘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다 보니 그가 '선택'당한 이유를 마지막에 몇몇 대사로 처리해 버렸다), 한국인 캐릭터는 그 자리에 아무나 들어가도 상관 없는 역할이었다(한국인 감독이니까 그렇긴 하겠지만). 기차에서 태어난 소녀의 초능력의 의미정도는 설명해줘야 하지 않았을까. 앞 칸으로 가며 죽은 캐릭터들 역시 죽어도 극 진행에 전혀 상관 없는 이들이었다. 총리는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대체 뭐란 말인가.


원작을 보진 않았지만, 원작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많았고 그걸 추려 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천하의 봉준호 감독이, 언제 그렇게 대사로 모든 걸 다 처리했었던가 싶다. 마더에서 '김혜자의 춤'이나 살인의 추억에서 '터널' 같은 상징 따윈 전혀 없이 설명하기 급급했다, 그마저도 부족했지만. 설국열차의 세계관은 차라리 설국열차가 받고 있었던 대중의 기대에 기댄 것처럼 보인다. 아마 관심 있는 이들은 설국열차의 몇 줄짜리 시놉시스정도는 꿰고 있었을 테니까. 계급에 대한 문제는 명확하지만, 계급 문제를 설명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할 수 있다. 아니지, 오히려 다양할 수 없는 건 계급 간 모순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 때문인데, 그 의무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순을 표현하는 클리셰란, 젠장. 유럽 귀족, 뻔한 화장과 옷으로 치장된 클럽씬, 화려한 색감이 있었으나 반복된 클로즈업과 반복된 의무부여로 점철된 '교육열차 칸' 장면은 정말 어디서 본 그로테스함이 아니었냔 말이다. 봉준호는 비주얼 아티스트라기 보다 자연스럽거나 섬세한 카메라 연출이 훌륭하다. 이런 클리셰는 박찬욱이 전문인데, 박찬욱과 봉준호 중간 어디쯤의 어색한 위치에서 씬들이 자리 잡은 느낌이다. 생선초밥 칸이야 말로 박찬욱과 봉준호 스타일의 적절한 배합이지 않을까 싶다. (검은 복면과의 싸움에서 주인공 원샷은 올드보이 장도리 씬을 떠올리 게  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이란 영화의 결말은 이런 내용이다. 매일 사람이 실종되는데 알고 보니 막차 언저리에 시간표에 없는 지하철 한 대가 운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이 여차저차해서 그 지하철에 타고 종착역에 도착한다. 그곳엔 고대부터 존재하던 괴물들이 있었고(<디센트>에 나온 괴물과 똑같았다. 진액이 흐르는 미끌미끌한 피부에, 코는 뭉개졌고, 얼굴과 체형은 딱 판타지 영화의 오크다), 그 존재들을 존재시키기 위한 임무를 숙명으로 받아 들이던 '열차기관장'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살해 당한 이들은 고대의 존재들의 식사거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처리하던 메개자, 수행인이 열차기관장의 밑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그 매개자-수행인을 처치하지만, 열차기관장에게 혀를 잘리고 큰 부상을 입는다. 열차기관장은 주인공 눈 앞에서 여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하며, 주인공에게 이런 의미의 대사를 친다. '이들 존재는 인간 이전의 존재이자 인간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섬겨야 할 존재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초월한 존재를 떠받드는 행위를 일컫는데, 마치 신을 모시듯 인간의 존재를 규명하는 존재로 간주한다. 열차기관장은 주인공에게 그 숙명을 받아 들이라 말하고, 주인공은 극한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 끝에 -어쨌든-그 운명을 받아 들인다. 


설국열차의 마지막 선택과 맥락을 같이 하는 건, 생명의 가치를 저울에 올려두는 모티브다. 생명의 가치를 두고 선택하는 모티브는 너무 많지만, 설국열차나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의 경우 인류에 대한 존재론적 가치를 개인의 생명과 비교한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건 당연히, 어렵다. 어려운 주제이기에 뭔가 많은 게 필요하다. 설국열차의 모든 시퀀스는 윌포드가 제시한 마지막 질문에 답하기 위해 존재한다 해도 무방하다. 설국열차의 각 칸은 현실의 알고리즘으로 '마지막 선택'을 위한 조건들어야 한다. 하지만 계급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한 쪽으로 너무 치중됐고(그래서 뻔하고, '균형'에 대해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 자체의 흥미를 위해 액션과 스타일이 열차를 가득채웠다. 결국 전개에서의 빈틈을 대사로 다 메꿔 버렸다. 


봉준호는 '블록버스터용' 감독이 아니다. 뭐 크리스토퍼 놀란도 메멘토나 인썸니아 같은 영화로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렀으니, 봉준호의 다음 작품은 설국열차보다 더 나은 작품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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