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131031.


공각기동대 프리퀄이 개봉한다는 걸 까먹고 있다 부랴부랴 아침에 코엑스까지 가서 챙겨 봤다. 안 봤다면 두고두고 후회했겠지만, 이 작품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새로 나온 공각기동대 시리즈를 못 봤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을 보고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고 했는데, 나도 포함된다. 실망스러운 프리퀄이다.



1. 쿠사나기 소령의 탄생


공각기동대는 쿠사나기 소령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이제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아니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혹은 작가도 안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과거가 밝혀진다. 빌어먹을! 그녀 만은 신비의 인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쿠사나기의 과거가 밝혀지고 나자 끈질기게 공각기동대를 물고 늘어졌던 사이보그의 정체성 문제가 맥빠지게 이도 저도 아닌 걸로 끝나 버렸다. 고스트의 핵심은 사이보그에도 깃드는가 아닌가다. 어쨌든 쿠사나기는 인간이었다, 사이보그가 된 캐릭터가 됐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언제부터 사이보그였는지 모르는 '그녀'는 항상 자신을 찾기 위해 고뇌한다. 이제 더 이상 고뇌할 필요가 없어 졌고, 공각기동대도 중요한 고민거리가 줄어들어 버렸다. 물론 쿠사나기는 사이보그 이전에 인간이었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밝혀져 버리면 관객들이 어쨌든 가지고 있던 희무끄리한 환상을 모두 깨버리는 짓이다. 이번 편에서도 그렇지만 점점 액션물이 되버리고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공각기동대의 액션이 멋지긴 했지만, 이전까지 중요했던 건 공안 9과의 작전 수행 능력이었다. 절묘하게 짜인 전투와 침투가 일품이었지, 개별 액션씬 자체에서의 매력은 크지 않았다. 액션만 따진다면 다른 에니메이션을 보면 되니까. 아직 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고는 하지만 악역을 뒤통수 치는 작전이 부재한 액션은 지적인 쾌감을 주지 못했다. 시티븐 시걸의 목꺽기와 첫 노리스의 돌려차기 같은 존재였던 쿠사나기가 별 거 없이 당하는 걸 보니 정말 뭔가 환상이 깨지는 것 같다. 뭔가 지금까지 있었던 게 다 없어진 느낌이다. 공각기동대는 사이버 펑크류 액션물이 아니란 말이다. 



2. 시리즈는 계속 된다


이전과 같은 게 있다면, 후반부 전개가 아주 빠르다는 것이다. 쓸데 없는 감정선이 절제되고 뭔가 설명과 장면들이 무지하게 제시된다. 놓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이것도 전략이라면 전략일까. 이번 시리즈에서도 고스트의 문제는 주제로 다뤄졌다. 쿠사나기는 전뇌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환상 속에서 산다. 스마일맨 이야기와 얼마 전에 개봉한 솔리드 스테이트에서도 주되 게 다뤘었는데, 전뇌화가 된 세상에서 지금 보는 게 진짜인지 가짠지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쿠사나기의 환상은 쿠사나기가 갖고 싶었던 것들이 투영돼 나타난다. 사이보그에게서 의지와 감정이 생겨 정보가 없는 미지의 것을 상상한다. 바이러스가 만든 정보의 오류인가, 고스트 때문인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찔러도 찔리지도 않을 것 같던 쿠사나기의 리즈 시절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소녀처럼 생긴 의체와 같이 그렇게 감상적이었던 것이다. 


공각기동대는 보고 나면 찜찜한 게 맛인데 이번 건 참 깔끔했다. 주 사건도 크게 사회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고스트의 문제도 쿠사나기 에피소드 정도고 이것도 잘 정리가 됐고. 공안9과 등장 인물들도 대부분 등장했고. 이거 참, 너무 프리퀄 다운 프리퀄이 아닌가. 다음 작품이 나오길 기다리지만 기대가 확 꺾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제 모습(?)을 찾겠지....



반응형

'기록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이비  (0) 2018.02.20
컨저링  (0) 2018.02.20
천안함과 분노 마케팅  (0) 2018.02.20
루즈 체인지 (911 - Loose Change 2nd Edition, 2006)  (0) 2018.02.20
P짱은 내 친구  (0) 2018.02.20
반응형

20130601.



00.

7명정도가 본 영화관에서 나오며, 한 커플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 "오빠, 이거 나 하나도 모르겠어." "응 그래, 난 재밌던데." 엔딩크레딧이 켜지자 마자 나간 커플, 내 앞에 앉아 산만했던 한 남자의 태도를 보면 그 커플의 여성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오랜 만에 긴 시간동안 집중해선지 뇌에서 열이 나는 느낌이었다. 컴퓨터를 계속 쓰면 열받는 것처럼. 잠깐 놓치면 스토리를 따라 갈 수 없을 것 같고, 앞 내용을 미리 예상하며 즐기는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서, 압축적이고 배경지식이 필요한 설정과 소재를 분석하기 위해, 순간순간 여운을 남기는 대사들의 숨은 맥락을 읽기 위해선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시간으로 일이 왕창 몰려 다른 일은 하나도 신경 쓸 수 없을 때, 정보가 흘러 들어오고 또 찾고 분석하고 선택-판단 내리며 '퍼즐'을 다 맞춘 후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쾌감 같은 게 느껴졌다. 보통 영화는 굳이 3D로 보지 않지만, 공각기동대는 원래 3D로 만들어졌어야 할 영화라는 생각. 중간중간 관객이 쉴 '틈'을 만들어 놨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방대한 내용을 압축하다 보니 밀도가 너무 높아 피로감을 주고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다면 실망했겠지만, 나는 공안9과의 '디테일'한 작전 수행을 보며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장점을 잘 살렸단 생각을 했다. 공각기동대를 본 게 오래돼 옛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곧 익숙한 느낌을 떠올릴 수 있어 영화를 보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기록은 이번 영화를 중심으로 해야만 할 것 같다.




1. 전뇌와 'Society'


내가 공각기동대를 보며 가장 인상 깊은 두 가지 장치는 '전뇌'와 전뇌를 매개로 가능한 네트 공간을 구축하고 '제3의 사회(Society)'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미래를 다룬 어설픈 오마주 영화들은 "그래도 결국은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인간애가 좋잖아"식으로 결론을 맺어 버린다. 그런 비현실적인 (싸구려)휴머니즘을 버린 공각기동대는 그래서, 인간의 '미래'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아주 적확하게 짚어 낼 수 있었다. 공각기동대가 구현하고 있는 '네트'은 상상할 수 있는 정보처리 총체로서의 성격 외에, 인간의 욕망이 모인 무의식 세계이자 집합체로 묘사한다. 현실 인격체의 지배와 종속을 강요 받지 않는 세계로서, 또 그러한 '의지'와 인격, 무의식들이 모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이제는 남매)는 매트릭스를 구축하는데 공각기동대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영화 내 매트릭스는 인간들이 상상하고 욕망하는 세계를 '시스템'이 인위적으로 창조한 것이다. 휴머니티를 구현하기 위한 목적의 공간이 아니다(그래서 난 3편의 엔딩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함-휴머니티의 부활-에도 약간 불만스럽다). 전뇌를 이야기하며 다루겠지만, 특히 인간의 의지를 조종하는 '존재'와 '능력'이 존재함을 주요 모티프로 다루며 그 지위를 신이 아닌 인간에게 부여하고,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현실을 지배하는 '역전현상'을 그리는 점에서 닮아 있다. 물론 창조한 세계의 완성도에 있어 두 작품을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번 작품에서 다룬 'Solid State'의 정의를 따져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Solid State는 일종의 '간호(시스템) 네트'로 미래 일본이 고령화 문제를 겪자 이 Solid State를 개발해낸다. 간병인이 없는 독거 노인은 장비를 통해 간호네트-Solid State에 연결되고 노인의 신체 상태 등은 Solid State를 통해 보고 된다. 작품 내에서 NPO들이 이 시스템을 반대한다고 언급하는데 장비를 통해 Solid State에 연결된 노인은 단지 살아 있다는 신호만을 보낼 수 있을 뿐, 실제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는 노인들이 말라 죽어 가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아마 말라 죽어 가는 포도밭(?)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Solid State를 통해 생명유지를 위한 '기술'을 제공 받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작품 초반 망명한 위험인물군 장군이 한 건물에 감금되어 있는데, 이 장군은 Solid State와 유사하게 정부의 관리시스템에 연결되어 관리 받고 있었다. 시스템을 통해 전달된 정보들은 정부에서 처리해 '메이드 로봇'들의 조종을 통해 원격으로 장군을 관리했다(이 장군은 살해당했지만 시스템 상 생명신호를 보내도록 조작돼 죽음조차 모르고 있었다). 작중 인물의 대사를 빌리자면 '망명 장군이 사용한 시스템의 보급형'정도로 평가 된다. Solid State를 직역하자면 고체 상태이지만, 위키백과(위)와 네이버사전(아래)을 찾아보면 저런 의미가 있다. 의역하자면 'Solid State' 반도체 혹은 집적회로처럼 미리 정해진 회로를 따라 기계적으로 정보가 처리되도록 구성된 장치를 뜻한다. 작품 내 Solid State는 표면상 간호네트을 호명하지만 Solid State의 시스템은 또 한가지가 있다. 

 


전자공학 분야에서는 반도체 부품 또는 진공관을 쓰지 않은 집적회로 등을 가리킨다. 



진공관과 같은 공간(space)에 전기 신호를 제어하는 소자에 대하여 트랜지스터(transistor)나 집적 회로(IC)라는 고체 중에서 전자기 현상을 이용하여 제어를 행하는 고체 부품. 현재는 주요 장치(main device)에 고체 장치(solid-state device)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Solid State에 연결된 노인들은 네트 상 하나의 'Society'를 구성한다. 간호네트에 연결된 세대는 자녀를 낳지 않은 세대들로서 자신의 피를 잇거나 재산을 물려 받을 자손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악역으로 등장한 미래 일본의 극우정치인은 이들 세대에게 '자식도 갖지 않고, 니트족이나 하며 경제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이들 세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발언도 한다. 이들 '말라가는 포도'세대는 단카이 세대 이후 현 일본의 세대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했다 볼 수 있겠다(작품의 배경은 대략 2030년 앞뒤정도). 'Solid State Society'는 간호네트에 연결된 노인들의 의지로 형성된 네트 상 또 하나의 사회를 지칭한다. 노인들의 의지는 생명의 연속이라는 본능에서 비롯되는데, 자손이 없는 노인들이 자신의 재산이나마 물려주고 호적상 자신들의 이름이 이어지도록 네트을 통해 아이들을 '유괴'해오는 것이다. 공안9과가 사건을 쫓으며 밝혀낸 유괴 숫자는 2만여 건이 넘었다. 이러한 규모의 아이들이 사라졌는데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음을 믿을 수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 경악한다. 씁쓸해한 것인지도.


이처럼 '공식적인 유괴'가 가능했던 건 '전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전뇌는 간단히, 인간의 뇌를 전자장치로 바꾼 것이다. 공각기동대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전뇌가 일반적인 장치로 다뤄진다. 전뇌는 이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고, Solid State는 아이를 가진 부모의 전뇌를 해킹해 전뇌화되지 않은 아이들을 전뇌화하고 아이와 부모의 기억을 조작해 가족의 기억을 지워 버린다. 기억이 지워진 부모는 원래 아이가 없었던 생활로, 기억이 조작된 아이들은 Solid State Society에 속한 노인의 자식이 돼 죽음을 앞둔 노인의 집으로 간다. 아이들을 선별하는 요소가 한 가지 있는데, 가정폭력이나 학대 등 가정에서 보호 받지 못하는 환경에 방치된 아이들을 골라 Solid State Society의 구성요소로 삼는 것이다. Solid State Society 시스템은 죽거나-죽게 될 예정인- 인생에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새 삶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이것이 모두를 위한 일본의 미래가 될 것이라 말한다. 사건이 해결된 후 아이들은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결정되지만 그들이 행복할 것이냐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Solid State Society 시스템이 꺼려지지만, 정말 틀린 것인가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Solid State Society의 의지와 목적은 작품 가장 후반부에 밝혀지는 요소고, 공안9과가 쫓는 사건의 표면엔 앞서 잠깐 언급한 극우정치인과 정부가 자리해 있다. 처음 정부 주도로 Solid State-간호네트이 구축될 때 제작자의 의지와 목적이 반영돼 Solid State Society가 탄생하게 됐지만, 극우정치인은 Solid State Society 시스템을 통해 유괴된 아이들을 모아 극우 교육시키는 등 극우엘리트를 양성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애초에 유괴가 정부의 목적이었는지, 극우정치인이 이 사실을 알아채 이용한 건지 잘 모르겠다). Solid State는 목적과 다르게 Solid State Society 시스템을 이용하는 정치인을 살해하고자 테러를 가했으나 공안9과에 의해 막히고 추적 끝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2. 


사이버펑크류의 공각기동대는 은하철도999처럼 복제인간이 그리는 미래가 아닌 사이보그가 만드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역시 사이보그다. 이번 작품에서는 덜 하지만 이전 작품들의 주요 테마는 '자아'다, 인간인가 아닌가,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 이번 작품에서도 주인공은 공안9과를 떠나 있는데, 그동안 네트을 돌아다니며 정보와 자아를 찾았다고 간단히 언급한다. 주인공은 전신이 사이보그지만, 공안9과에는 전신이 사이보그인 자, 눈만, 어디 팔만 사이보그인 자 등이 두루 섞여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모두 전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두뇌의 10%정도 밖에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고 하지만, 앞으로 100%를 쓸 수 있는 날이 올지 안 올지 모른다. 물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없을 일일 것 같다. 컴퓨터 보다 훨씬 뛰어난 장치를 머리에 심고 다닌다면 노트북이니 스마트폰이니 이런 게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3D작품을 보며 재밌던 점은 공안9과 인물들이 실시간으로 -전뇌를 통해-'화상채팅'을 주고 받는 장면을 3D로 표현한 것이다. 본 사람이라면 '아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지 않았을까, 통신 외에도 자료를 검색하고 정보를 주고 받는 장면들이 스크린에서 3D로 만들어졌는데 나름 실감났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구를 사용한다. 전뇌는 인간의 능력을 한층 끌어 올려 준다. 기억력, 정보력, 이해력과 관련되 부분까지 더 향상 된다. 마치 이들을 통신을 보고 있으면 무림 고수의 '전음'이 생각 나기도 한다. 과거 SF영화에 나왔던 스마트폰이 일상이 된 현실에서, 더 극한까지 편리가 이루어진 세계가 아닐까 싶다.


네트에 접속하기 위해 일부만 전뇌화 하거나, 뇌 전부를 전뇌화하는 방법 등이 존재한다. 주인공의 특기 중 하나가 전뇌를 통한 해킹이다(온몸이 100% 사이보그),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취하고 정보를 조작해 닫힌 곳은 열고 흔적을 지운다. Solid State Society 시스템이 가능했던 건 이 전뇌를 해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뇌화된 인간은 하나의 객체로 타인이 쉽게 들어가 정보를 열람하고 조작하고 조종할 수 있게 한다(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전뇌가 해킹당해 직접 아이를 데리고가 전뇌 시술을 받게 했다). TV판 1기였던가, 공안9과의 상대역으로 나온 인물이 해킹의 천재로, 바로 앞에서 그 사람의 얼굴을 봤지만 아무도 기억하거나 실제 얼굴을 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모든 전뇌는 해킹당하고, 모든 이의 시각과 기억에 '스마일맨'만이 남는다. 전뇌가 있기에 네트라는 거대한 가상 공간을, '제3의 사회(Society)'를 가능케 하지만 전뇌에 종속당한 인간은 개인의 의지를 잃어 버리고 감각까지 지배한다. 이런 세계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일상 생활에서 조금 나은 혜택을 받는 정도가 될거라 생각한다. 지금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작품은 한 국가의 정치, 사회를 배경으로 다뤄지는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일반인들은 접할 수 없는 정보, 권력과 각 종 능력들을 활용하는 이들이 핵심적으로 배치돼 있다. 이들은 쉽게 '일반인'을 다룬다, 행동과 기억마저 조작, 조종한다. 마음만 먹으면 전뇌화된 인간 누구라도 조종할 수 있는 세계, 긍정적인 의미에서 광활한 네트라고 하지만 네트에 반영된 의식-무의식에 역으로 지배당하는 모습에서 개인의 존재가치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 보이기도 하다.


최근 SNS나 몇몇 대형 인터넷 사이트들이 새로운 여론형성의 도구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과거 인터넷 문화를 넘어 하나의 가시적인 집단성을 가지고 현실세계에 까지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공간이 발생하게 된 건 도구의 발달이 결정적이었다. 유선이 무선으로 변하고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져 버렸다. 언제 어디서란 표현보다 나은 표현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정보의 소비력 또한 왕성해졌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정보의 생산과 소비에 참여하고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다양한 집단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일베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 때 다수의 사람들이 오프라인 토론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자는 주장을 했다. 여러 의미를 읽을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들은 온라인이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문화를 여전히 오프라인이라는 현실 세계의 하위 카테고리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온라인 상에서 현실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며 오프라인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양적으로 확장된-다양한 이들과 공감하고 소통한다. 새로운 성격을 가진, 여러 의미를 함의한 현상이 발생함에도 여전히 옛날 얘기를 되풀이하는 모습을 접하며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지배를 받던 시절은 끝났다. 공각기동대가 제시한 미래처럼 '네트'라는 새로운 공간이 창출되고 그 질서에 맞는 '제3의 사회(Society)'가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3.


초인을 다루는 작품들에서 타인의 생각을 읽고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궁예의 관심법이 한창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다. 타인의 생각을 읽고 싶다는 건 누구나 가진 욕망인 것 같다. 공각기동대가 그린 세계는 그러한 능력이 더 이상 초인의 능력이 아닌 세계를 뜻한다. 언제 어디서 내가 읽히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도 전화와 카드 사용내역을 추적하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다 알 수 있다. 최근 나온 '구글글라스'처럼 우린 그 자리에 앉아 원하는 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눈 앞에 펼쳐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 육체를 가진 이들은 종종 목 뒤에서 케이블을 뽑아 드는데 이 케이블은 언제 어디서나 연결돼 네트에 접속하거나 타인의 목 뒤에 연결시켜 심문이나 고문 없이 내장된 모든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는 방법이다. 나와라 가제트 만능팔과 같은 느낌이다. 주인공이 한 번 꽂으면 되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다...... 무선과 유선을 쓰는 느낌이랄까, 유선이 훨씬 안정적이고 빠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번 작품 마지막 장면에서 Solid State의 핵심 전뇌를 찾아내 주인공이 그 사이보그 육체에 케이블을 연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Solid State의 전뇌에 해당하는 '사이보그'는 권총으로 얼굴을 박살내 자살한다, 사이보그의 모든 기록이 지워지기 전 주인공은 사이보그 개인의 네트 속으로 침투하여 '왜?'라는 정보를 얻으려 한다. 공각기동대의 세계에선 전뇌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까지 기록되고 정보화된다. 애초에 무의식이란 용어 자체와 모순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차라리 욕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하다. 아무튼, 이 공각기동대에서 다뤄지는 무의식은 전뇌를 통해 정보화되고 해킹을 통해 타인의 무의식까지 파악하고 조작할 수 있게 만든다. 네트의 광활함은 인간이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이, 혹은 속마음, 본능적인 욕망 등이 전뇌를 통해 전기신호로 바뀌어 네트로 흘러들어 온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의식을 빙산의 일각이라 표현했고, 무의식의 크기는 가늠하기 어렵다 말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가 의식의 세계라면, 네트는 의식과 무의식이 만든 세계라는 점에서 성격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네트의 광활함을 생각해본다면 네트의 크기와 깊이는 측정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Solid State Society 시스템은 Solid State에 접속한 노인들의 동의, 아이를 유괴해도 좋다는 노인들의 무의식-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또 그러한 욕망이 만든 시스템이었다. 공안9과에서 유일하게 신체가 기계화되지 않은 토구사('지금'은 전뇌화되었다)는 Solid State Society 시스템을 추적하던 중 아이를 유괴당할 위험에 빠진다. 토구사가 잃어 버린 줄 알았던 아이를 찾는 장면에서 주변의 노인들이 경멸과 공격적인 시선을 던진다. 인상 깊었다, Solid State Society 시스템의 일부인 노인들의 유괴에 대한 무의식-욕망이 그대로 나타나는 장면이었다(Solid State Society의 전말은 이 장면이 한참 지난 뒤에 나오긴 한다). 인간은 무의식에 영향을 받지만 타인 앞에서 무의식, 욕망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울려 살기 위한 다양한 질서들이 존재하기에 정해진 규칙에 맞게 살아야 한다. 각 종 사건, 사고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현실 세계에도 적용되고 있고 분명 현실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지만 범죄로 취급 받거나 '음지'의 일로 구분된다. 


앞서 잠깐 일베이야기를 꺼냈는데, 일베뿐만 아니라 과거 디씨인사이드, 이름을 말하기 어려운 사이트들을 통해 사람들은 쉽게 타인들 앞에 욕망을 드러낸다. 또 그러한 문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아바타라 칭하는 인터넷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 유행했었고 지금도 '아바타'의 변형된 형태로 많은 이들이 인터넷 상의 정체성을 새로이 만들고 있다. 일본어라 정확한 표현을 모르겠지만, 특이할만한 게 네트로 무의식이 '흘러들어 간다'라는 표현이다. 무의식은 인식하지 못하기에 부지불식 간 행동으로 나타난다. 프로이트는 일상에서 '실수'를 통해 타인의 무의식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는데, 공각기동대는 이를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네트라는 공간에서 무의식이 현실이 되는 세계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소령'으로 불리는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는 작품의 마지막에 '이미 다음 사회가 탄생했다'라는 말을 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현실이 된 네트라는 세계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두 가지 세계 공존하는 사회(Society)가 도래한 것이다. 




4.


무엇이 현실이냐고 물을 필요 없다. 우리가 인지하는 게 현실이다. 인지할 수 없는 것은 추측, 가능성으로 남을 뿐이다. 기억이 조작되고 타인의 얼굴을 볼 수 없다면, 그것이 현실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모른채 또 다른 진실이 존재할 것이란 믿음은, 알고자 하는 사실-진실과 내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 간의 틈을 메우려는 개인의 사고를 발달시킨다. 개인의 사고가 옳은 방향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 개인은 그러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한다. 그러한 틈을 메우는 개인의 사고와 행동이 인간의 역사에 도움이 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무수히 반복되어 옳고 그름의 가치를 판단하는 게 무의미할 지경이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표현이 '의미상실'이란 단어였다. 이는 주인공이 Solid State의 제작자와 접속했을 때 주로 사용된 말인데, 주인공은 케이블을 통해 Solid State 제작자의 의식 속으로 들어 간다. 주인공은 Solid State 제작자의 의식-무의식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옆 동료가 '더 이상 그곳에 머물렀다간 저 놈과 함께 의미상실하고 만다'는 말을 한다. 주인공은 이미 100%로 사이보그다.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기준을 '고스트(ghost)'의 유뮤로 판단한다, '영혼'과 유사한 개념이라 느끼면 될 것 같다. 공각기동대 시리즈에는 타치코마라는 4족 보행 로봇이 등장한다. TV판 어떤 에피소드에서 이를 다뤘었는데, 이 타치코마들의 AI가 발달하여 '자신들의 존재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감정을 갖는다. 인위적인 생명체에서 고스트가 만들어지 게 된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우나 사이버펑크류 작품들이 그렇듯 사이보그와 인간은 어떻게 구별하는가가 이 작품의 무거운 주제 의식 중 하나다. 


Solid State 제작자는 이미 몇 년전 죽었다. 공안9과가 맞닥뜨린 그는 Solid State 제작자의 의지가 담긴 안드로이드였다. Solid State 제작자는 살아 있을 때 (기계)'의체'를 통해 사회생활을 했었고 몸은 거의 자택에 있었다. 그가 죽었지만, 그의 의지가 의체에 남아 의체를 조종하는 이가 없었지만 '살아 움직인 것'이다. Solid State Society, 네트의 구성 원리가 여기서도 적용된다. Solid State 제작자의 의지-무의식이 흘러나와 의체에 남고,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된 것이다. Solid State 제작자(의 안드로이드)는 죽으며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너다.' 주인공 역시 의체 조종이 뛰어나다. 의미를 짐작하자면, 주인공이 조작하는 의체에도 무의식이 흘러나와 있을 것이고, 이러한 무의식이 네트에 다시 흘러 들어와 네트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 작용을 하고 현상으로 나타난다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몇몇 장면에서는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의 의체와 동일한 모습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는데, 기억이 좀 불분명하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미래 일본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Solid State Society 시스템에 주인공 역시 동의하고 있다라고 볼 수도 있다. 네트에 접속한 '그녀'의 무의식이 Solid State로 흘러들어와 Solid State Society의 일부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죽음은 의미상실이란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의미상실을 죽음이란 단어로 대체할 수 없다. 주인공은 사이보그다, 인간으로서 죽은 것인가 산 것인가. 그렇기에 공각기동대는 죽음이란 표현 대신 의미상실이란 표현을 쓴다(물론 이는 번역된 단어로 일본어는 무엇인지 모른다). Solid State 제작자의 안드로이드나 타치코마와 같은 경우를 본다면 그들에게 죽음이란 표현이 적절한가 생각해본다. 의미상실이라니, 내심 아주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의지이자 하나의 의미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 의미를 잃어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자살을 택한다. 영원히 사는 방법은 불로불사의 육체를 얻는 방법도 있지만, 인류의 역사에 기록되어 후세에 끊임 없이 되풀이되며 그 의미를 갖는 방법도 있다. 인간들은 각 자의 의미를 갖고 만들며 산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죽음'을 맞이 하거나 '기계'가 될 것이다. 타인의 의지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하는 삶은 개인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이미 의미를 상실한다. 공각기동대의 세계에서 전뇌화된 인간들이 타인에 조종될 때 우리는 그 존재를 인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5.


공각기동대를 다시 보고 싶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다시 보진 못하겠다.

반응형

'기록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P짱은 내 친구  (0) 2018.02.20
설국열차  (0) 2018.02.20
셜록 유령신부 이런 걸 극장에 걸다니  (0) 2016.01.07
가름워즈 오시이 마모루의 새 시도  (0) 2016.01.04
시티즌포 이것이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0) 2015.12.16

+ Recent posts